아파트 단지 뒤편, 푸드트럭 앞에 예닐곱 명이 줄 서 있다. 슬리퍼를 신고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도 있었고 양복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중년 남성도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다가가 보니 트럭 안에 가마솥이 있었다. 트럭 주인이 김이 풍풍 솟는 솥단지 안에서 갓 쪄낸 순대를 꺼내는 중이었다. 얼마나 맛있는 순대길래 사람들이 줄 서서 먹나 싶어서 나도 뒷줄에 붙어 섰다.
그런데 웬걸. 5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도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은 “아이고, 한 시간도 더 걸리겠네”라고 혀를 내두르며 가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아저씨의 손놀림이 굼떴고 일하는 요령도 없어 보였다. 토종 순대와 찹쌀 순대를 시키면 먼저 토종 순대 한 줄기를 솥에서 꺼내 느릿느릿 썰었다. 마치 한석봉의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 가래떡을 썰듯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러고는 종이행주를 뜯어 도마를 닦은 뒤 솥뚜껑을 열어 찰순대 한 줄기를 찬찬히 썰었다. 한꺼번에 두 줄기를 자르면 빠를 텐데. 혹시 ‘줄 서서 먹는 순대’라는 시각적 홍보 효과라도 노리는 걸까?
그런 의구심도 잠시, 신고라도 접수되면 이 트럭은 또 새로운 자리를 찾아 떠나야 할 것이다. 주인아저씨는 생각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그는 한 명씩 정성껏 응대하며 포장도 꼼꼼하게 해주었다. 손님에게 과하게 알은체하지 않았는데 느릿한 말투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줄을 선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동네 주민들끼리 팔짱을 끼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줄 서서 기다리길 싫어하는 내가 자리를 뜨지 않은 이유는, 눈앞의 정겨운 풍경이 감미로운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십여 분이 지나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순대와 기다림을 맞바꾼 셈이다. 따뜻한 봉지를 들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본다. 찔레꽃 향기가 섞인 저녁 공기가 달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