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먹거리 안정을 위해 퍼붓는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올해 쓰는 예산만 4조원을 넘는다. 이 예산은 지난 10년간 68% 가까이 급증했다. 연평균 5.3%씩 늘어난 셈이다. 연간 경제성장률을 큰 폭으로 웃도는 비율로 먹거리 물가 대응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재정 투입 일변도 대책보다 구조적 문제 해결로 물가 대응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가 8일 열린재정 재정정보공개시스템에서 ‘정부 예산 사용 내역’을 분석한 결과 올해 정부가 편성한 ‘먹거리’ 관련 물가 대응 예산은 3조9050억원으로 집계됐다. 농산물 가격안정·유통효율화·수급안정·양곡관리 등 사업에 편성된 예산을 취합한 규모다. 여기에 정부가 먹거리 물가 폭등을 잡기 위해 1500억원을 추가 배정함에 따라 실제로는 4조550억원이 투입된다. 먹거리 물가 대응 예산이 4조원을 넘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관련 예산은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는 2014년만 해도 관련 예산으로 2조3278억원을 배정했다. 예비비로 투입한 1500억원을 제외하더라도 10년간 67.8%가 오른 셈이다. 최근에는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이 예산은 물가상승률이 5%를 돌파한 2022년 전년 대비 15.8%의 증가 폭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3조원을 넘겼다. 3조원에서 4조원에 다다르기까지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가격 안정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올해 최종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부 목표치인 2%대를 기록할 가능성에 물음표를 단다. 중동전쟁 리스크로 인한 국제유가 불안, 고금리 상황이 물가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탓이다.
물가 대응 예산이 정말 필요한 데 쓰이고 있는지 평가가 쉽지 않다는 점도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물가관리·대응에 10조8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열린재정에서 확인한 먹거리 물가 예산의 2배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이 큰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공표하지 않는다. 국민일보는 여러 차례 예산 내역을 문의했으나 기재부는 공개에 난색을 표했다.
‘무제한 재정 투입’을 능사로 여기는 정부의 물가 대응 방식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에도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한 긴급 가격안정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원유 등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특성상 가격 보조식 정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예산을 늘리면 결국 재정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조금, 비축물량 지원 등 10년째 반복되는 재정 투입식 물가정책은 임시방편이고 단기적 현상 유지에 지나지 않는다”며 “돈을 쓰더라도 농가의 생산성이 높아지도록 유도하는 구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