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15년 전 성범죄 사건을 자백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겨 이를 근거로 공범들이 기소됐지만 대법원이 유서의 증거 능력을 이유로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특수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A, B, C씨에게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기소된 이들과 중학교 동창인 D씨는 2021년 3월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D씨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06년 11월 피고인들과 함께 한 학년 후배인 여학생을 불러내 술을 먹이고 차례로 간음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D씨는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공소시효도 남았고 사건이 꼭 해결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D씨 유서를 계기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피해자 진술 등을 근거로 2021년 12월 A씨 등을 기소했다. 재판의 쟁점은 유서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느냐였다. 1심은 무죄 판결했지만, 2심은 D씨가 피고인들을 무고할 동기를 찾을 수 없다며 유서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판결을 재차 뒤집었다. 대법원은 유서에 구체적 범행 내용에 대한 진술이 없고, 피해자 진술과 명백히 배치되는 부분도 있는 만큼 신빙성을 온전히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유서에는 피고인들이 성폭력 범행을 미리 계획하고 피해자를 불렀다고 적혔지만, 피해자는 동성 친구 제안에 따라 술자리에 갔다고 진술하는 등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유서는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14년 이상 지난 후 작성됐다. 시간 흐름에 따라 기억이 과장되거나 왜곡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