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일부터 엿새간 유럽 3개국 순방에 들어갔다.
첫 방문국인 프랑스는 60년 전 서방에서 중국과 최초로 수교한 국가다. 다음 방문국인 세르비아는 코소보전쟁 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격을 받아 반서방 정서가 강하다. 마지막 헝가리는 유럽연합(EU)과 나토의 회원국이면서도 친중·친러 행보를 보인다.
중국은 이번 순방을 통해 미국 중심의 대중국 전선에 균열을 만들려 한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미국·유럽의 연합전선에 맞서는 것은 힘겹다. 헝가리와 세르비아가 사실상 중국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초점은 프랑스에 맞춰져 있다.
프랑스는 샤를 드골 정권 때부터 독자노선을 추구했다. 1964년 미국보다 15년 앞서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한다. 미·중 전략경쟁 구도에서 미국에 예속되지 않고 제3의 축이 돼야 유럽의 번영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중국이 반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경제적으로 쇠퇴하는 유럽이 중국과 협력 강화를 원한다는 점도 호재다. 유럽은 오랜 구조적 문제에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덮치면서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었다. 신재생에너지와 인공지능(AI), 전기차 등에선 미국과 중국에 뒤처졌다. 시장과 기술을 가진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중국이 유럽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걸림돌이 있다. 중국에 대한 유럽의 전략적 인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2019년 3월 발표한 정책보고서에서 중국을 ‘동반자이면서 경제적 경쟁자, 체제의 라이벌’로 규정했다. ‘체제의 라이벌’에는 정치적·이념적으로 중국식 사회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중 언론과 만났을 때 이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이런 규정은 불필요한 혼란만 일으키고 중국·EU 관계에 장애물을 만들었다”면서 “운전하는데 건널목에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신호등이 동시에 켜진 것과 같다. 어떻게 운전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은 EU가 켜놓은 삼색 신호등을 초록색으로 바꾸기 위한 행보의 하나다. 중국 관영언론들도 “중국과 유럽은 근본적 이해관계 충돌이 없고 지정학적·전략적 갈등도 없다. 공통의 이해관계가 차이점보다 훨씬 크다”면서 “강한 유럽은 중국의 이익에 들어맞고 강한 중국은 유럽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경제적 돌파구를 찾는 유럽과 미국의 봉쇄에 직면한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동반자’와 ‘경제적 경쟁자’ 규정은 상당 부분 양립할 수 있다. 한발 나아가 중국은 자국을 ‘체제의 라이벌’로 여기는 유럽의 인식을 바꾸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유럽은 현대 민주주의와 인권이 태동한 곳이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이후 유럽의 근대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유럽의 정치적·이념적 가치는 오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사회·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도 중국과 수교를 결단하면서 “이 결정에는 현재 중국을 지배하는 정치체제에 대한 최소한의 승인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60년이 지났지만 이 부분에선 달라진 게 없다.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레드라인으로 선포하고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유럽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 레드라인이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