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

입력 2024-05-08 03:04

적어도 어떤 사람이 신앙인이라면 그가 누구든지 갖고 싶어하는 공통적 열망이 있다고 믿는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인격이 바다같이 넓어지며 세상을 꿰뚫는 지혜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게 간절히 열망하나 우리는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자주 낙심한다.

왜일까. 바로 그 과정에 이르는 데 꼭 치러야 할 지루함을 견뎌내는 힘을 기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해가 다 지나가면서 그해 초 결심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중 몇 가지를 지속해서 시행하고 있을까. 지속하고 있는 것도 있을 수 있으나 결심했던 많은 것을 이미 중도에 포기했을 수도 있다. 이는 우리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떤 것이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습관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시행해야 하는 과정이 주는 지루한 느낌을 수용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거기서 “행복해지려 하는 사람이 잊지 말고 길러야 하는 한 가지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권태를 이기는 힘이다. 우리는 흔히 권태를 경험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반면 러셀은 권태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전한다. ‘생산적인 권태’와 ‘파괴적인 권태’가 그것이다. 파괴적인 권태는 하루하루를 따분하고 무료하게 하며 삶의 역동성을 떨어뜨려 생기를 잃게 만드는 권태다. 반면 생산적인 권태는 얼핏 보기에는 지루하고 따분한 듯하지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소중한 과정의 연속이다.

러셀은 “모든 위대한 일은 이 생산적 권태와 그것이 가져오는 지루함을 견디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1521년부터 2년 동안 자신을 제거하려는 중세 가톨릭 교회의 칼날을 피해 프리드리히 제후의 보호 아래 바르트부르크성에 숨어들었다. 루터로서는 불안하고도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지루하고 무료해 보이는 은둔의 시간 동안 종교개혁을 위해 매우 중요한 작업을 해냈다. 라틴어로 쓰인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 모든 독일 평민이 성경을 손에 넣고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루함을 견딘 힘의 산물이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평생 자기 집 반경 10㎞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지극히 단조롭고 반복된 일상생활을 보냈다고 알려졌다. 이 세상에 볼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재미없는 삶을 살까 싶다. 그러나 얼핏 단순하고 지루하게까지 보이는 그의 삶에는 인류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주는 위대함 힘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눅 14:28) 신앙의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자, 영이 깊어지고 인격이 바다같이 넓어지며 세상을 꿰뚫는 지혜있는 자로 쓰임받고자 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드는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이뤄지는 것이 없는 것 같은 단순하고 권태롭기까지 한 영적 훈련의 시간을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루함은 따분하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그 안에 한 사람의 생명을 꽃피우는 하나님의 은총이 들어 있다는 마음으로 지금 새결심을 한다면 아마 우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머지 않은 미래에 이뤄가고 있을지 모른다.

(새문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