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191명 달하고 4명은 삶 마감했는데… “사기죄 처벌 수위 높여야” 목소리

입력 2024-05-07 02:25

대규모 전세사기 범행을 벌인 ‘빌라왕’ 등에게 잇따라 중형이 선고되고 있지만 전반적인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피해자가 수백명, 피해액이 수백억원에 달해도 일반 사기죄 최대한도인 징역 15년까지만 선고할 수 있는 현행법의 한계 때문이다.

판사 출신 오기두 변호사는 6일 “전세사기처럼 범죄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거나 사기죄 최대 형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 변호사는 인천지법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지난 2월 ‘인천 건축왕’ 남모(62)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면서 “법정최고형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남씨 사건 피해자는 191명으로, 그중 4명이 세상을 등졌다. 오 변호사는 “특경법은 피해자 개인의 피해액이 5억원 이상일 때만 적용할 수 있어서 일반 사기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라며 “전세사기가 경제적 취약계층 인생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점을 고려하면 형량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남씨 사건 피해자 정모(38)씨도 “우리나라 법이 왜 이렇게 약한지 모르겠다”며 “15년이 최고형이라지만 무기징역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현행 형법은 일반 사기죄 최고형을 징역 10년, 2건 이상 사기범죄를 저지른 경우 최대 15년으로 규정한다. 피해금액이 5억원 이상이면 ‘징역 3년’ 하한만 있는 특경법을 적용할 수 있지만 합산 피해액이 아닌 개개인의 피해액을 기준으로 한다. 앞서 1조3000억원대 펀드사기를 일으킨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의 경우 특경법상 사기 혐의가 적용돼 징역 40년이 확정됐다. 하지만 빌라 등 피해액이 5억원 미만이 많은 전세사기에는 특경법 적용이 어렵다.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 피해자들을 대리한 법무법인 우리 김정철 변호사는 “현행법은 10명에게 30억원을 빼앗은 사람이 1명에게 10억원을 빼앗은 사람보다 낮은 형을 받을 수 있는 불합리한 구조”라며 “특경법을 개정해 구성요건에 피해자 수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형기준상 권고형을 높여 현행법 한도 내에서라도 최대한의 처벌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세사기 중형 선고가 ‘이례적 판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이런 의견을 수렴해 최근 전세사기 등 ‘조직적 사기’ 범죄 양형기준을 손질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조직적 사기의 경우 피해금액 50억~300억원의 양형기준상 가중 구간 형량은 징역 8~11년, 300억원 이상은 11년 이상이다. 최근 1년간 피해자 100명이 넘는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 5건(피해액 102억~315억원)을 심리한 법관 5명 중 3명이 양형기준상 권고형을 벗어난 형량(징역 13~15년)을 선고했다. 양형기준은 강제력은 없지만 벗어나려면 판결문에 이유를 적어야 해 양형기준을 높이면 전반적인 형량 상향 효과가 있다.

조직적 전세사기 범행에 범죄단체조직죄를 함께 적용해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중권 법무법인 거산 변호사는 “보증금을 애초부터 돌려줄 생각이 없었던 조직적 범죄에는 범죄단체조직죄를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범행에 가담한 건축주와 분양대행업자 처벌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한주 김용헌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