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특별법이 사고 발생 551일 만인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본회의에서 처리했지만, 특조위 업무 범위와 권한이 과도하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이다. 4개월 만에 처리된 법은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회동 이후 여야가 한발씩 양보해 마련한 합의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법안 처리가 지연되던 시기에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았다. 305명의 생명을 잃고 얼마나 더 안전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사회가 됐냐는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진상규명은 물론 재난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정파성에 휘둘린 진상조사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쓰라린 교훈도 얻었다. ‘책임자 처벌’에만 매달린 조사로는 사고 발생의 원인과 수습 과정의 문제 등 진짜 중요한 것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점에 이태원 특조위가 출발한다. 전문가들은 특조위 조사위원 선정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상은 전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스펙 삼아 정계에 진출하고 싶은 변호사들로만 위원회가 채워질 위험성이 크다”며 정파성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조사위원들로 꾸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세월호 특조위 조사위원 17명 중 15명이 변호사였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얘기다. 비단 박 전 조사관뿐만 아니라 각 정당이 추천하는 조사위원들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리거나, 지지 세력이 요구하는 결론에 함몰돼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생각해보면 이태원 참사는 한국 사회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상상하지 못했던 사고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선 채로 숨이 막혀 죽을 수 있다는 걸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이태원 참사는 주최 측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재난 사고이기도 하다.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행사를 어떻게, 어디까지 관리해야 할지 기준을 수립할 책임이 있다. 당시 경찰과 소방의 구조활동 문제를 분석해 제대로 된 대응 매뉴얼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재난 및 안전 관리 전문가들의 참여가 꼭 필요한 이유다.
유례없는 이태원 참사와 가장 비슷한 사고가 1989년 4월 영국 셰필드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있었다. 현장에 있던 축구팬 97명이 압사하고 760명 넘게 다치는 대형참사였다. 당시 경찰은 술에 취한 훌리건에 의한 사고사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유족과 전문가들의 요구에 의해 사고 20여년이 흐른 뒤 출범한 ‘힐즈버러 독립조사위원회’의 결론은 달랐다. 위원회는 경찰을 비롯해 관련 기관들이 사고 전조 증상을 무시하는 바람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고, 허술한 구조 대응이 이어지며 참사가 일어났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를 이끌었던 필 스크레이턴 영국 퀸스벨파스트대 교수는 이태원 참사 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절대적 진실은 없다. 다만 다수의 사람이 일치하지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이를 종합했을 때 드러나는 ‘종합적 진실’이라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태원 특조위가 아무도 동의할 수 없는 절대적 진실에 매달리기보다 대다수가 합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종합적 진실을 찾아준다면 어떨까.
지난 10년간 우리는 재난 참사 진상규명에 적잖은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이자 단원고 학생이었던 유가영씨는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세월호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듯한 세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뒤늦게 시작되는 이태원 특조위가 좀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변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김나래 사회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