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용배 (6) 부모님 강요로 결혼한 아내, 마음의 준비 안 됐다며…

입력 2024-05-08 03:05
1981년 3월 25일 국회의원 선거날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현대 예식장에서 이경희 사모와 결혼식을 올리고 기념 촬영을 하는 박용배 목사.

수요예배 후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나니 김 집사님이 잠시 대화를 하자고 했다. 우리 교회 앞에 사는 이재훈 장로님과 김쌍금 전도사님 댁에 무남독녀 딸이 있고 그 딸 이경희양은 영주기독병원에 간호조무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전도사님이 기도하다가 ‘박 선생을 아들로 양자 삼으라’는 성령님의 감동이 있었다며, 한 달 후 제대하면 장로님 댁에 양자로 들어와 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상상도 하지 않던 일이라 나는 기도해 보겠다고 말하고 집중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대 후 대구에서 취직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양자가 되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답을 구하고 있는데 한 달이 지나 전도사님이 가부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네가 10년 가까이 객지 생활하면서 번 돈이 남았느냐. 조금 있던 돈은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하고 말씀하신다는 마음이 들면서 지금은 순종하라는 감동이 왔다. 그래서 제대 한 달을 앞두고 자취하던 집에서 전도사님 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장로님과 전도사님은 나를 양자로 입적시키려고 여기저기 알아보셨다. 장로님의 형님이 경북도청에서 국장님으로 근무하셨는데 알아보니 동성동본이 아니면 양자로 입적이 안 된다는 연락을 받으셨고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6개월가량 시간이 흐른 뒤 전도사님은 “너는 결혼 상대자를 놓고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초등학교 출신이지만 자녀교육을 위해 상대 여성이 고등학교를 나왔으면 좋겠고 피아노를 치면서 찬양할 수 있는 자매를 놓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전도사님은 알겠다고 하시더니 영주기독병원으로 가서 딸을 사표 내게 하고 짐을 싸 들고 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다음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오니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딸 세 사람이 함께 흐느껴 울고 있었다. 딸이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하고 엄마가 기도하는 중에 아들과 네가 결혼하는 환상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이 둘을 결혼시키고 아들이 아닌 사위가 되게 하라고 하신다는 이야기를 했다. 딸은 앞으로 음대에 진학해 성악가에게 시집가고 싶었는데 왜 저런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면서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양자로 들어간 지 6개월 만인 1981년 3월 25일 결혼하게 되었다. 춘산교회 목사님이 주례하셨고 삼촌과 숙모님이 신랑 측 혼주석에 앉으셨다. 첫째와 둘째 형님은 지난밤에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퉁퉁 부은 얼굴에 한눈에 알코올 중독자들로 보였다. 함께 방위 생활을 하던 동료들과 고향 친구들 몇 명이 참석해 주었다.

예식이 끝난 후 부산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버스 안에서 아내는 한마디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돌렸다. 부산에 도착해 터미널 근처 여관에 방을 잡아놓고 식사하러 가자고 하니 아내는 싫다고 했다. 부모님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결혼은 했으나 아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며 접근하지도, 말을 걸지도 말라며 내가 조금만 가까이 가면 화를 내고 할퀴려고 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싫으면 아예 결혼하지 말 것이지 예식까지 다 치르고 나서 저러는 것이 내가 못 배우고 부모님도 없다고 무시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