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이 길어지면서 이차전지 소재 업계가 암흑기에 돌입했다. 주요 소재 기업들은 일제히 사업계획을 축소하거나 재검토하고 나섰다. 채용도 미루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에코프로는 전기차, 배터리 등 전방산업 부진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제품, 고객, 영업 등 부문별 사업 전략을 재검토할 계획이다. 원가 혁신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다. 앞으로 2년 안에 30%의 원가 절감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올 1분기 29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지난해 1분기(영업이익 1824억원)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는 지난해 4분기(영업손실 1194억원)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시장 침체가 당분간 지속한다는 전제 아래 이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사업 전략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LG화학도 투자 규모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LG화학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2646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8037억원) 대비 약 67% 급감한 성적표다. 배터리 소재 사업을 하는 첨단소재 부문만 떼어 봐도 영업이익이 2150억원에서 1420억원으로 34% 감소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완성차나 배터리셀 기업의 투자 일정에 맞춰 투자 규모가 일부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선방한 포스코퓨처엠 역시 생산량 조절에 나섰다. 포스코퓨처엠은 올 1분기 영업이익 379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203억원) 대비 87% 증가한 실적을 올렸다. 그럼에도 양극재·음극재 등 소재에 대한 추가 투자 시점을 순연했다. 2026년까지 44만5000t 생산 목표를 잡았던 양극재는 39만5000t으로 낮췄고, 음극재도 22만1000t에서 11만3000t으로 줄였다. 수요 정체 상황에서 생산능력을 급하게 늘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오는 9일 실적을 발표하는 엘앤에프도 10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대규모 적자에 따른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소재 업계의 채용 계획도 얼어붙었다. 에코프로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를 돌연 취소했다. 올해는 애초 계획보다 적은 수의 신입사원을 뽑을 예정이다. 다른 기업도 생산기술직이나 품질관리 등 부분적인 채용 외에 대규모 선발은 없는 실정이다.
다만 중국산 흑연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가 2년 유예되면서 배터리 업계는 일단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분위기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3일(현지시간) 관보를 통해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에 따라 중국산 흑연으로 만든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도 2026년 말까지 차량당 7500달러 보조금을 준다고 밝혔다. 흑연은 배터리 4대 핵심 소재(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 중 음극재를 만드는 데 쓰이는 핵심 광물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흑연 사용량의 90%를 중국산에 의존하는데, 만일 제재가 이뤄졌다면 국내 배터리를 탑재한 미국 생산 전기차 대다수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예 조치는 일시적이다. 배터리 업계는 2년 내 흑연 등 핵심 광물 자립도를 높여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자원 공급망을 틀어쥔 중국과 가격으로 승부를 보긴 어렵다. 광물 대체 국가 확보와 함께 기술, 품질로 앞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