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공무원 A씨는 지난해 7월 근무 중 실신해 의식 불명에 빠진 뒤 24일 만에 결국 사망했다. 고성을 지르는 민원인을 응대하다가 쓰러진 것이다. 해당 민원인은 법적 요건이 부족해 발급받지 못하는 서류를 끝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한 민원인으로부터 153차례에 걸쳐 동일한 민원을 받았던 경북 포항시 공무원 B씨는 2021년 10월 결국 염산 테러까지 당했다. 민원이 해결되지 않자 해당 민원인이 생수병에 든 염산을 얼굴에 뿌렸다. B씨는 눈 등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장기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경기도 김포시 신입 공무원 C씨는 도로 보수 공사와 관련해 주민들로부터 항의성 민원을 받았다. 이후 온라인에 C씨가 공사를 승인했다며 그의 실명과 소속 부서, 직통 전화번호까지 공개됐다. C씨는 협박 등 ‘악성 민원’ 전화에 시달리다 지난 3월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부는 이처럼 공무원을 상대로 한 ‘악성 민원’과 그 피해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 하에 2일 ‘악성 민원 방지 및 민원 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명확한 정의가 없었던 악성 민원을 폭언·폭행·성희롱 등 ‘위법 행위’, 부당한 요구·반복 민원 등 ‘공무 방해 행위’ 크게 두 가지로 규정했다.
특히 민원 공무원들은 민원인이 욕설·협박·성희롱 등 폭언을 할 경우 통화를 종료할 수 있으며, 문서로 신청된 민원에 폭언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는 경우 이를 종결할 수 있게 된다. 동일한 내용의 민원이 반복 됐을 때도 취지, 유사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를 종결할 수 있다.
민원 통화는 시작할 때부터 내용 전체가 녹음된다. 공무원 개인정보에 대한 공개 수준 또한 기관별로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또 6일 이내의 공무상 병가 사유에 ‘악성민원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가 추가되며, 정부는 피해 공무원을 일시적으로 업무에서 제외하고 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지침에 명시하기로 했다. 민원 공무원이 악성 민원 대응 과정에서 징계 요구된 경우 민원인의 위법 행위 여부 등 경위를 참작하고, 피해를 입은 공무원은 필수 보직기간 내에도 전보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정부는 보상책도 추가했다. 민원 공무원이 승진 관련한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민원 업무를 직무 특성 관련 가점 항목으로 명시하고 난이도, 처리량 등 담당한 민원 업무 특성에 따라 수당 가산금을 추가로 지급할 계획이다.
정부는 악성 민원인에 대한 법적 조치와 피해 공무원 보호를 위해 전담 기구도 마련한다. 올해 하반기부터 각 기관마다 전담 대응팀을 두도록 권장하는 한편, 민원 공무원 상담과 현장 조사 등을 담당하는 범정부 대응팀을 운영해 기관별 대응팀을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는 ‘민원처리법’, ‘정보공개법’ 등 개정이 필요한 법률에 대해 신속하게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이행에 속도를 내고, 월별·분기별로 추진 현황을 점검할 방침이다. 또 관계 법령에 민원인의 위법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명시하고, 지자체 등 일선 기관에서 법적 대응 시 활용할 수 있는 상세 지침을 마련해 제공할 계획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번 대책을 통해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고, 공무원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