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됨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문화의 유무를 근거로 든다. 그중에서도 언어와 글자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고유한 문화다. 인간이 일구어 온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도 바로 글자다. 그리고 글자로 역사를 써서 남긴 ‘책’이라는 물건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발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종이에 글자를 적어 엮은 단순한 물건이다. 어쩌면 그저 종이뭉치일 뿐이다. 이렇게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책이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과거를 들춰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우선은 독보적인 베스트셀러 ‘성경’을 예로 들어 보자.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으로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으로 성경은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모든 게 넘치도록 풍족한 현대사회인데도 책 절도는 끊이지 않는다. 책을 훔치는 이유도 여러 가지인데, 재미있게도 제목 때문에 많이 도난당하는 책도 있다. 미국 작가 애비 호프먼이 1971년에 쓴 책 ‘Steal This Book(이 책을 훔쳐라)’은 무정부주의 행동지침에 관한 내용인데 오늘날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 중 하나다. 가수의 운명이 때로는 자기가 부른 노래 제목을 따른다는 말이 있듯 책 제목도 잘 지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면 최명희의 ‘혼불’이 원래 단행본 한 권짜리 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이 소설은 1981년에 신문사 장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돼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그 후 이야기를 덧붙여 1995년까지 신문 연재를 이어나가다 작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미완성으로 남았다. 연재분은 열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그런데 헌책방에선 여전히 절판된 한 권짜리 ‘혼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최명희는 병으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순간에도 글을 쓰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을 자식처럼 아끼곤 한다. 완성도를 높이고자 몇 번이고 집필과 수정을 반복하는 일은 예사다. 심지어 책이 출간된 뒤로도 고쳐서 새로 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 작품에 자그마치 10회나 개정판을 냈다면 어떨까.
수능시험에도 자주 인용되는 소설 ‘광장’은 최인훈의 대표작으로 1960년 잡지에 연재하며 처음 세상에 나왔다. 작품은 호평을 받았고 즉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최인훈 자신도 이 소설에 큰 애정을 품고 있어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열 번이나 개정판 작업에 몰두했다. ‘광장’을 좋아하는 독자 중에는 연도별로 달라진 개정판을 사 모으려고 헌책방에 발품을 파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역시 책방에서 일하며 책을 쓰지만, 때론 도대체 책이 뭐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읽고 쓰고 가지려고 애쓰는지 궁금하다. 그만큼 소중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것도 있으니 책을 읽고 얻은 삶의 지혜가 그것이다. 어쩌면 그게 책의 가장 신기한 부분이 아닐까. 작은 책 한 권이 때론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뒤바꿀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