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과학사학과 부교수인 빅터 샤우가 쓴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중국의 옛 만주 지역에 위치한 탄광도시 푸순의 역사를 서술한다. 저자가 푸순의 역사에 주목한 이유는 석탄 등 화석연료를 중심으로 한 현대의 ‘탄소 중독 세계’가 어떻게 동아시아에 도래해 발전하고 파탄에 이르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푸순은 한때 동아시아 최대 탄광도시였다. 지하에서 막대한 양의 석탄이 발견됐고, 20세기 초 일본의 만주 침략과 더불어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가 푸순 탄광을 경영하며 대규모 석탄 채굴 산업이 발전했다. 푸순은 일본이라는 제국의 동력을 책임진 칠흑의 심장이었다. 일본은 화석 연료의 대규모 활용을 이상화하는 에너지 인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소 기술관료주의’를 발전시켰다. 이것이 일제 패망 후 푸순을 되찾은 중국에 고스란히 승계됐고, 동아시아 전체로 확산됐다.
책은 20세기 내내 이어진 푸순의 탄광 개발사와 함께 그 속에서 인간과 환경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조명한다. 또 동아시아에서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레짐’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산되었는지 보여주면서 ‘석탄에 의존한 국가 개발주의’를 동아시아 정치의 핵심적 특징으로 포착한다.
저자는 화석 연료로의 전환은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게 아니었으며 그 배후에 국가주의, 개발주의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국가주의적 목적을 위해 과학과 기술을 총동원해 화석 연료를 쥐어짰다.” 이것은 기후위기 시대에도 화석 연료에 대한 집착이 지속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푸순의 탄광은 2019년 완전히 폐쇄됐다. 화석 연료 시대를 상징하던 푸순의 폐광은 탄소가 만든 세계의 운명을 암시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