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의 본회의 처리에 합의한 데는 참사 관련 책임자 처벌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검·경은 주요 참사 책임자를 두고 1년 넘게 수사를 벌여 23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이 중 1심에서 유죄 판단을 받은 것은 극소수에 그친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핵심 인물들은 여전히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2월 박성민 전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 등 3명의 1심 선고공판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이태원참사에 관한 경찰 내부 보고서를 삭제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보다 앞서 법원은 지난해 11월 이태원 골목에 불법 구조물을 세운 혐의를 받는 해밀턴호텔 대표 등 3명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태원참사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책임자 가운데 1심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들이 전부다.
다른 주요 책임자에 대한 재판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구청장이 대표적이다.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은 참사가 발생한 장소를 관리하는 기관장으로서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에게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이 있는지를 두고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서장이 무전 등으로 현장 상황을 듣고도 대처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 전 서장은 무전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박 구청장도 참사 당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고, 인력을 투입해 안전 관리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구청장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는 취지다.
김 전 청장은 참사가 발생한 지 약 440일 후인 지난 1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다. 김 전 청장은 이태원참사로 재판에 넘겨진 경찰 중 가장 고위 인사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의 혐의 여부를 두고 장고를 거듭한 끝에 그를 기소했다. 김 전 청장에게는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경찰력을 배치하는 등 사고 예방에 나서지 않고, 지휘·감독 등을 하지 않은 혐의가 적용됐다.
김 전 청장은 지난달 첫 재판에서 “인파가 밀집한다는 정보만으로는 압사 사고를 예측할 수 없으며, 참사 당시 배치된 경찰 인원이 부족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 전 서장 등의 재판이 공전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김 전 청장에 대한 1심 판결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올 전망이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