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현 “AI 시장 2라운드선 승리해야”… HBM 주도권 쟁탈전

입력 2024-05-02 04:05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한발 뒤처졌다고 평가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고사양 제품으로 한 번에 역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속도전으로 HBM을 ‘가장 빠르고, 가장 높이’ 쌓아 올려 차세대 제품 경쟁에선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지난달 26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내 경영 현황 설명회에서 “인공지능(AI) 초기 시장에서는 우리가 승리하지 못했다”면서 “2라운드는 우리가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HBM 초기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패배했다고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를 수성했지만, AI 열풍에는 적기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HBM을 납품하는 시기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 이미 굳어진 HBM 공급망에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경 사장은 HBM을 둘러싸고 ‘성능 경쟁’이 펼쳐질 것이고, 이때 초격차 기술을 통해 단숨에 역전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최신 AI 메모리로 불리는 5세대 HBM(HBM3E) 시장을 ‘2라운드’로 보고 기술 경쟁력으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HBM3E 12단 제품을 개발하고 현재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 중이다. 올해 2분기 중 양산에 들어간다.


HBM3E 12단은 D램을 12단으로 쌓은 구조로 삼성전자의 ‘야심작’으로 불린다. 5세대 HBM 가운데 최대 용량(36GB)을 갖췄다. 향후 HBM을 둘러싼 성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HBM은 주로 8단이다. SK하이닉스는 고객사의 요청 일정에 맞춰서 올해 3분기 12단 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내년에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엔비디아 등 ‘큰 손’에 HBM 공급을 기정사실로 했다. 전날 열린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올해 하반기 12단 제품의 급격한 수요 증가에 적기 대응해 HBM 사업을 확대하겠다”며 “HBM3E 비중은 연말 기준으로 전체 HBM 판매의 3분의 2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HBM은 주문형 제품이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양산 계획을 공개한 것은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납품을 확정했다는 의미다.

경 사장은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며 “작년부터 새로운 기회가 시작되고 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올해 반드시 턴어라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AI를 활용한 B2B(기업간거래) 비즈니스가 이제 곧 현실이 된다”며 “그전에 에너지 소비량은 최소화해야 하고 메모리 용량은 계속 늘어나야 한다. 데이터 처리 속도도 훨씬 효율화돼야 하는데 우리 회사가 이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