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세다. 초저출생, 지방 소멸, 서울·수도권 집중, 청년·노인 빈곤, 연금·의료 붕괴 등 대한민국의 사회 재생산 위기를 ‘자살’이라고 규정한다.
저자 김현성은 ‘힝고’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1988년생 사회비평가다. 금융권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으며 페이스북 등에 데이터와 통계 분석을 바탕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평을 해왔다.
저자가 한국사회의 재생산 위기를 집단적 자살로 규정하는 이유는 문제(병)를 알면서도 해결(치료)에 나서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재생산과 유지를 위해서는 출산, 주거, 일자리, 복지 등 손질해야 할 분야가 많고 여기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도 개인도 이런 공동체 문제 해결에 돈을 내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공동체를 위한 지출에 인색하다는 건 증세에 대한 강력한 저항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GDP 규모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시민들이 왜 그토록 증세에 반대하는가? 저자는 그 이유를 “한국인들이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다수 한국인은 공동체 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쓸 돈이 없다. 가처분소득이 극도로 낮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주요 국가와 비교해 주거와 식료품 등에 들어가는 생활비용이 높은 편이고,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사교육비를 사실상 준조세처럼 내고 있다. 상당수 한국인은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한다. 한국의 고용 구조는 제조업 위주에서 서비스업 위주로 변하고 있는데,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이 매우 낮다. 한국은 또 자영업의 나라이고, 중소기업이 고용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낮고 내수 의존적인데, 인구 감소로 내수가 급격히 쪼그라드는 중이다.
저자는 낮은 노동생산성, 높은 생활물가, 수도권 집중이라는 세 가지 이유가 “높은 수준의 국내총생산 규모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한국인들을 실질적으로 가난한 상태에 놓여 있게 만들며, 이들이 심리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공동체 전체를 위한 자원을 지출하는 것에 대단히 인색하게 만든다”고 진단한다. 특히 “수도권과 서울 집중이 사실상 한국 공동체의 물리적 소멸에 거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동체를 위한 투자에 인색한 건 개인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우리의 통념보다 훨씬 더, 놀랄 만큼 인색하다.” 한국의 일반정부지출은 2020년 기준 38.1%로 OECD 최하위권이다. 사회복지지출은 OECD 평균에 비해 거의 8%p 낮다.
사회복지의 외주화, 필수의료와 교육의 붕괴 등은 사회 재생산을 위해 정부가 돈을 쓰지 않는다는 중대한 증거들이다. 국민연금 문제도 마찬가지. 국민연금 고갈은 일반적인 현상이며, 독일과 일본 등은 이미 20% 이상 국가 재정을 투입해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나라는 재정적자를 봤으면 봤지 연금을 고갈시키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절반 수준인 9.4%의 재정을 연금에 투입하면서 고갈론을 퍼트리고 있다.
병든 공동체를 개인도 국가도 방치하는 가운데 다들 ‘각자도생’인데, 그 생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저자는 먼저 정부의 지출 증가를 시작으로 집단 자살로 향하는 현재 경로를 되돌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한국의 국가부채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며 “정부가 조금만 재정을 확장하면 미래에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단언한다. 미래를 위해 돈을 아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미래가 지금 사라지는 중이다. 저자는 정부가 재정 확장을 통해 지금까지 개인이 지출하게끔 맡겼던 영역을 조금씩 정부의 몫으로 돌려놓으면 시민들에게 증세 등 공동체 문제 해결을 위해 더 지갑을 열어보자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고 얘기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