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들과 라포 형성 노력… 나만의 제과점 차릴 것”

입력 2024-05-02 02:01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희망별숲’ 성형실에서 제과팀 사원 김교보씨가 밀가루를 체에 치고 있다. 희망별숲은 삼성전자가 100% 출자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김씨는 발달장애인 200여명과 함께 쿠키 등 제과류를 생산한다. 이한형 기자

‘별숲’은 별들이 총총 떠 있는 하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3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문을 연 장애인 표준사업장 이름을 ‘희망별숲’으로 정한 건 이곳에서 일하는 모두가 희망을 품고 별처럼 밝게 빛나길 바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희망별숲은 쿠키 같은 제과류를 만드는 사업장인데, 일반 직장과는 조금 다르다. 여기에 근무하는 200여명은 발달장애인이다. 직급과 직책 없이 평등하게 ‘사원’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정성껏 빚은 쿠키는 외부에 판매하는 게 아니라 생일을 맞은 삼성전자 임직원에게 ‘선물’로 보낸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장애인의 자립 기반을 닦는 독특한 일자리인 셈이다. 62명으로 단출하게 출발한 희망별숲은 앞으로도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올해에는 희망별숲 안에서 더욱 뜻깊은 만남이 이뤄졌다. 처음으로 자립준비청년을 식구로 맞으면서다. 김교보(23)씨는 지난해 12월 인턴과정을 거쳐 지난 2월 1일부터 희망별숲 제과팀 정직원이 됐다. 희망별숲은 자립준비청년 김씨가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자립과 자립이 만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의미를 더했다. 최근 희망별숲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김씨는 “업무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발달장애인 사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많이 귀담아듣는다”면서 “그들과 라포(친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같은 팀 동료이자 선배인 손호진 희망별숲 제과팀 매니저도 김씨에 대해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발달장애인 사원들이 많이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밀가루를 체에 치고 반죽하는 제과팀 성형실의 막내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임시 거주지인 수원에서 1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출근해 작업장 전등과 오븐을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리학을 전공한 데다 삼성 희망디딤돌2.0 프로그램을 통해 제과·제빵 교육 과정을 수강한 덕분에 업무에 적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김씨는 “(삼성 희망디딤돌2.0) 제과·제빵 교육 과정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그때 배웠던 기본지식은 물론 기구 사용법을 배운 게 실전에 많이 쓰여서 처음에 업무를 숙지하는 게 힘들지 않았다”면서 “함께 교육받은 친구들과 아직도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서로 대화도 하고 응원도 한다”고 말했다. 협업할 줄 알고 무엇보다 배경지식이 탄탄해 적응을 빠르게 했고 기구 다루는 것도 능숙하다는 손 매니저의 말을 김씨에게 전달하자 김씨는 직속 상사의 호평에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희망별숲이 자립준비청년을 직원으로 채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김씨의 사례가 모범이 돼 지속해서 채용연계 인턴십 과정을 운영할지 검토 중이다. 허윤정 희망별숲 교육팀장은 “인턴십 기간에 김씨가 발달장애인들과 소통을 워낙 잘하는 게 인상적이었고 일을 탁월하게 잘했다”면서 “온순한 성격으로 사원들과 편안하게 어울리고 훈련 때도 눈빛이 초롱초롱해서 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다”고 채용 배경을 설명했다. 허 팀장이 인턴을 상대로 낸 신제품 개발 과제에서도 김씨는 인상 깊은 아이디어를 제시해 칭찬을 받았다. 희망별숲은 향후 신제품 개발 때 김씨의 제안서를 고려하기로 했다.

직장 밖으로 나오면 김씨도 여느 20대 초반의 열혈 청년이다. 체력 관리를 위해 출근할 때는 일부러 정류장을 한두 개 앞서 내려 걸어가거나 퇴근 후에는 매일 헬스장에 들른다. 이참에 ‘보프’(보디프로필) 촬영도 준비하고 있다. 주말이나 쉬는 날에는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긴다.

김씨와 같이 삼성 희망디딤돌2.0 제과·제빵 교육 과정을 수료한 이희망(가명·25)씨는 김영모과자점 취업에 성공했다. 처음 받은 소중한 월급으로 작은 오븐과 믹싱기를 구매한 그는 “이제는 집에서 케이크 아이싱 연습을 할 것”이라며 남다른 열정 내비쳤다. 이씨는 제과·제빵 교육 과정을 친구 소개로 알게 됐다. 처음에는 취업을 목적으로 신청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기초부터 다시 쌓을 좋은 계기가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씨는 “제과·제빵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가장 기뻤고 삼성전자 용인 기숙사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탁구를 하면서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목표는 ‘나만의 작은 제과점’을 차리는 것이다. 그는 “어느새 일에 익숙해졌고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일하고 있어 매우 만족한다”면서 “파티시에 김영모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고 나중에 이름을 건 제과점을 차리고 싶다”고 전했다.


삼성 희망디딤돌2.0은 올해 2년 차를 맞아 총 9개 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지난해 첫해 진행한 5개 과정(IT 서비스, 전자·IT 제조, 제과·제빵, 반도체 정밀배관, 중공업 선박 제조)에 네일아트, 온라인 광고·홍보 실무, 중장비 운전, 애견미용 등 4개 교육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달과 7월에 순차적으로 개강하며 반도체 정밀배관과 중공업 선박 제조 교육은 연중 상시로 수강생을 모집한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