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지리적으로 인도양 태평양 대서양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중간 기항지다. 매일 100척 내외의 선박이 드나들고 1년에 7만명 넘는 다국적 선원이 이곳을 찾는다. 중국 상하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교역량이 많은 싱가포르 항구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이승재(58) 선교사를 최근 만났다.
이 목사는 자신을 ‘항목(港牧·Port Chaplain)’으로 소개했다. 군목 교목 경목 등과 비교하면 한국교회에 생소한 개념인 항목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했다. 주로 부두에 정박한 선박을 방문해 선원들과 만나 교제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상담과 기도, 성경을 비롯한 기독 자료를 나누는 사역을 펼친다.
㈔한국외항선교회(대표 노영상 목사) 소속인 이 목사는 “싱가포르에 입항하는 배에는 미전도 국가 출신 선원이 적지 않다”며 “컨테이너 화물의 경우 정기적인 선박 항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한 번 만났던 선원을 다시 만날 수 있고 단계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원 선교의 장점은 다양한 국적의 선원이 항구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부두로 들어오는 선박 90%가 급유를 받는데 이때가 선원들과 접촉할 절호의 기회다. 특히 야간 급유는 선원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이때 항목이 건네는 신앙 서적은 선원들에겐 반가운 선물이다.
이 선교사는 선원 선교뿐 아니라 싱가포르 현지인을 위해서도 복음을 전하고 있다. 싱가포르 법률은 노방전도나 축호전도를 철저히 금지한다. 종교 간 화합을 강조하는 국가 정책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지 교회들은 소그룹 형태로 모이는 셀 교회가 일찍부터 발달했다. 이 선교사는 “싱가포르에는 500개 넘는 교회가 있고 복음도 퍼져 있지만 교회 밖에서 선교의 열매를 맺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다만 기존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데 가정으로 이웃을 초청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대표적인 전도법”이라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에는 총 12개의 한인교회가 있다.
싱가포르는 페라나칸(Peranakan)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로 ‘혼혈의 후손’이란 사전적 의미를 넘어,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과 원주민 사이에 생겨난 물리적 융화와 그들의 자손이 대대로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적 융합이 페라나칸이다. 이런 문화적 특징은 종교 분포에도 영향을 미쳐 중국계 인구가 다수를 이루는 만큼 불교(33%)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기독교(18%) 이슬람교(14%) 도교(10%) 힌두교(5%) 등이 그 뒤를 잇는다.
그는 “싱가포르에는 성도 수 1만명 넘는 대형 교회가 4곳에 달한다. 이 교회들의 특징은 교인들의 헌금 수준이 높다는 것”이라며 “선교적 역량이 뛰어난 한국교회와 자본력이 강한 싱가포르 교회가 세계 선교를 위해 연대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싱가포르=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