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 사회는 두 차례 ‘돼지 파동’을 겪었다. 돼지고기 값이 너무 올라(일본에 수출하느라 국내 물량이 부족해서) 성난 주부들이 ‘안 사먹기 운동’을 벌였던 1차 파동과 정반대로, 2차는 돼지고기가 남아돌아 문제였다(1차 파동 후 너도나도 양돈에 뛰어들어서). 돼지 값이 폭락해 양돈농가 파산이 잇따르자 농림수산부는 ‘비계를 떼어낸 돼지고기’만 팔도록 의무화했다. 당시 돼지고기 한 근이 1000원이었는데, 비계 없는 살코기 한 근도 똑같이 1000원에 팔게 했다. 떼어낸 비계 중량만큼 살코기를 더 써야 하니 그만큼 돼지고기 소비가 늘어나리란 계산이었다.
‘비계는 버려도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던 이 대책은 아직 삼겹살이 유행하기 전이어서 가능했다. 이후 사료를 먹이는 양돈이 보급돼 비계에서 풍기던 누린내가 사라지면서 살코기와 비계가 붙은 돼지 뱃살, 삼겹살의 시대가 왔다. 1990년대 솥뚜껑 삼겹살의 대인기에 더욱 폭발한 삼겹살 수요는 비계를 돼지고기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부위로 격상시켰다. 근육에 박혀 있는 마블링(근내지방)과 달리, 비계는 근육과 근육 사이의 덩어리 지방(근간지방)을 말한다. 소고기의 감칠맛에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더해주는 마블링의 역할을 돼지고기에선 비계가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위상이 달라져도 주객이 전도될 순 없는 법이다. 정부의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은 지방을 1㎝ 이하로 권고하는데, 종종 지켜지지 않아 비계 함량 시비가 벌어져 왔다. 작년에는 삼삼데이(3월 3일. 축협이 정한 삼겹살 먹는 날)에 유통된 ‘반값 삼겹살’이 비계에 고기가 조금 붙었다고 해야 할 정도여서 문제가 됐다. 최근 제주도 흑돼지 식당의 삼겹살도 소비자의 공분을 샀다. 허연 비계가 대부분인 사진에 “막창인 줄 알았다” “불판 닦는 거냐”는 댓글과 함께 “제주도 가지 말자”는 말까지 나오던데, 관광지에서 어쩌려고 그러나 싶다. 북한 장마당에서도 그런 돼지고기를 팔면 “지도자급 돼지”란 핀잔을 듣는다고 한다. 뚱뚱한 김정은처럼 비계만 잔뜩 붙었다는 뜻이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