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 세금 들인 기재부 자문위, 인구위기 해법은 ‘텅텅’ [현장기자]

입력 2024-04-30 00:05

정부의 중장기 전략 수립을 위한 민간 자문기구가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이전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수백조원씩 예산을 투입하고도 실패한 기존 저출산 대책의 방향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 제언 역시 별다른 내실 없는 또 한 번의 ‘저출산 정책 재검토’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기획재정부 산하 민간 자문 기구인 중장기전략위원회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미래전략포럼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한 중장기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산율 제고는 반드시 이뤄야 하지만 단기간 내 출산율을 높이더라도 공급 증대 효과는 20~30년 후에야 나타난다”며 “출산율뿐 아니라 경제활동인구와 생산성을 동반 제고하는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 실패를 다시 한번 인정하고 방향 전환을 선언한 셈이다. 한국 정부는 2006년부터 2021년까지 280조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합계출산율은 매년 추락을 거듭해 지난해 0.72명까지 내려앉은 상태다.

그러나 이런 중장기위가 내놓은 인식과 대안은 조금도 새롭지 않았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외국인 근로자·전문 인력의 유입을 늘려야 한다는 제안은 근래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이 수십 차례씩 반복해온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혁신해야 한다는 제언도 마찬가지다.

가족수당 일원화를 비롯한 구체적 정책 아이디어가 일부 제시되기는 했지만 실현가능성이 낮다. 중장기위가 내놓은 발표는 철저하게 ‘정책 제안’으로 규정돼 있다. 기재부 내부에서조차 아직 정식 대안으로 검토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5일 열린 중장기위의 백브리핑을 보면 이번 중장기위 제안의 ‘밋밋함’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브리퍼로 나선 한 교수는 “(준비 과정에서) 청년에게 들은 답변 중 ‘휴대폰이 재밌어서 아이를 가질 편익이 없다’는 답변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저출산 요인인 것처럼 언급한 것이다. 나랏돈을 들여 초빙한 인구 분야 전문가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었다. 회식 자리 상사가 뱉을 법한 ‘MZ 때리기’ 발언이라는 기자단 성토가 이어지자 “관련 발언은 취소하겠다”고 물러섰다.

이런 중장기위가 지난해 진행한 14차례의 회의에 편성된 예산은 3220만원, 이들 몫으로 배정된 연구용역비는 4억2000만원이다.

이의재 경제부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