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강조해 온 상속세 개편 공약이 ‘공언(空言)’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 내부적으로는 세수가 당장 큰 걸림돌이다. 세수 전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상속세를 깎기 부담스럽다. 외부로는 ‘여소야대’ 국회라는 큰 벽이 있다. 야당이 ‘부자 감세’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관련 논란이 있는 법 개정은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29일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귀속 상속세수는 19조2603억원에 달한다. 2021년(4조9131억원) 대비 4배 가깝게 급증한 것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사망에 따라 큰 규모의 상속세가 일시적으로 늘었던 점을 감안해도 상속세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전체 세수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황에서 정부의 고민은 깊다. 지난해 세수가 당초 예상보다 56조원이나 감소한 데 이어 올해도 세수 상황이 녹록지 않다. 당장 법인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난해 귀속분 법인세는 0원으로 집계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경기까지 부진해 양도소득세 등의 세수 전망도 암울하다.
법 개정을 위해 필수적인 야당 설득 작업도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상속세 개편 시나리오는 크게 3개다. 이 중 가장 범위가 넓은 상속세율 자체에 대한 개편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유산취득세’ 도입안도 법 개정 없이는 제도 개선이 불가능하다. 세제 당국은 상속 총액에 대해 매기는 상속세 대신 상속자 개개인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유산취득세 도입을 검토 중이다. 가령 60억원을 3명 자녀에게 균등하게 물려줄 때 상속세의 경우 60억원에 대해 세율 50%가 적용되지만 유산취득세는 한 사람당 20억원씩에 대해 세율이 적용된다. 10억원은 공제받을 수 있어 10억원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면 돼 감세 효과가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30억~100억원 사이 자산가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야당은 이 역시 부자 감세로 보고 있다.
그나마 가능성이 큰 건 가업상속공제다. 이 역시 법 개정은 필수다. 가업상속공제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규모가 커져 왔다. 다만 야당은 가업상속공제도 일부 기업에 특혜를 주는 제도라는 입장을 가져왔다.
정부는 일단 상속세 개편을 공론화한 뒤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속세 개편 내용은 오는 7월 세법개정안에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