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다. 눈을 뜻하는 치온(chion)과 꽃을 의미하는 안토스(anthus)를 합친 말이다. 이름을 지은 영국 식물학자 존 린들리(1799~1865)는 눈이 덮인 것처럼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핀 꽃에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영어로는 화이트 프린지 트리(white fringe tree). 굳이 번역하면 ‘흰 장식술 나무’다. 가늘고 긴 하얀색 꽃잎을 보며 영국 사람들은 옷끝에 매달린 장식술을 연상했다.
우리는 쌀밥(이팝)을 떠올렸다. 4, 5월은 배고픈 계절인 보릿고개였다. 지난가을에 추수한 쌀은 떨어졌고 여름내 먹을 보리는 여물지 않았는데, 무더기로 핀 흰꽃이 밥처럼 보인다며 붙인 이름이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의 상징이었다. 심지어 밥이 잘 익었는지 한 숟가락 떠먹었다가 시어머니에게 모질게 야단을 맞은 며느리의 한이 서린 나무라는 전설도 있다. 그런 서글픔이 싫어서였는지, 24절기 중 입하(立夏)에 꽃이 피는 나무라는 뜻으로 ‘입하나무’라고 부르다가 이팝나무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름에 밴 가난의 흔적과는 달리 이팝나무는 매우 귀한 존재다. 새로운 발아·재배법이 개발돼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게 됐지만 실제로는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만 분포하는 세계적 희귀종이다. 일본은 2급 멸종위기종(나가노·아이치현은 1급)으로 지정했고, 1992년 유엔환경계획 생물다양성협약에 서명한 중국은 ‘멸종위기 생물 적색목록’에 포함시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백년 된 이팝나무 8그루를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 600건에 달하는 천연기념물 중 꽃이 피는 나무로는 숫자가 가장 많다.
이팝나무는 물이 많은 해에 더 화려하게 핀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팝나무 꽃이 무성하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지금 전국 어디서나 이팝꽃이 한창이다. 지난겨울 눈이 많았고, 봄비도 적지 않은 덕인 듯하다. 옛날과 달리 풍년이 들어도 농민들 힘든 건 마찬가지라지만 그래도 올해는 대풍이었으면 좋겠다.
고승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