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하고 있다는 것의 반대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앙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1964년 책 ‘희망의 신학’이 출간되면서 희망신학이 새로운 종말론의 한 연구 방법이 됐습니다.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에 의해 제기된 ‘희망의 신학’은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에 의해 자극받은 신학입니다. 종말론이 개인 영혼 구원보다 사회 개혁에 우위를 둔다는 등 몇 가지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기독교 신학의 한 연구 방법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희망은 신앙과 신학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희망이 없는 곳에는 절망뿐입니다. 희망이 있는 인간은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며 내일을 향해 삶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실종된다면 삶의 가치와 의욕, 의미도 사라집니다.
하박국서는 포로기 직전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 예언서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 사회에서 하나님 공의를 찾아보기 힘든 그런 시대였습니다. 정국의 혼돈 속에서 강포와 패역, 겁탈, 변론과 분쟁이 많았고 조공을 바치느라 온갖 악행이 자행되었으며 무고한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율법을 외면함으로 공의가 사라지자 백성들 삶이 피폐했습니다.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괴로워하며 절망의 몸부림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서 하박국은 하나님으로부터 해답을 얻고자 했습니다. 양심을 파는 사람은 오히려 잘 살고 정직한 사람이 뒤처지며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이 득세해 높아지는 일이 현재에도 많이 일어납니다. 여러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억울하게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하박국서 시대 배경과 다를 바 없는 이런 현실을 볼 때 우리는 절망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셨나, 내 사정을 모르시나 공의를 잃으셨나”라는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기도를 통해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합니다.
기도 후 하나님의 응답은 하박국의 생각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침묵하시던 하나님은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말씀에서 벗어나 돌이킬 줄 모르는 유대는 징벌당하고 그 채찍으로 불의한 바벨론을 사용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현상들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원하신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박국 2장 4절에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상황과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목적과 정답은 오직 믿음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을 넘어 소망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비록 환경에서 희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소망의 말씀으로 살아 내는 힘을 얻어 환경의 장애를 넉넉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임우성 서울 압구정예수교회 목사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사무총장과 웨이크사이버신학원 이사장인 임우성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압구정예수교회는 2000년 서울 압구정동에서 주님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궁극적 소망을 두면서도 사회와 민족 문제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이고 거룩한 교회, 음지를 살피며 작은 일에 충성하는 교회가 되길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