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인 남매가 한국에서 소송을 벌여 196억여원 상속 재산을 국내에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연은 남매를 대리해 유산을 되찾아준 법무법인이 비용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위기에 놓이자 소송을 벌이면서 알려졌다. 대법원은 유산을 찾는 데 기여한 변호사의 공로가 일부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A법무법인이 북한 주민 B씨 남매와 한국 내 재산관리인을 상대로 낸 보수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남매의 부친은 남한에서 부를 일군 사업가로 2012년 3월 숨졌다. 그는 북한에 두고 온 남매를 잊지 않았고 오래전 중국에서 몇 차례 만났다고 한다. 뒤늦게 북한에서 부고를 접한 남매는 상속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정부는 2012년 ‘남북가족특례법’을 도입해 북한 주민의 상속권도 인정하고 있다. 북중 접경지역에는 북한 주민이 상속인으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유전자검사 등을 중개하는 조선족 브로커들이 활동 중이라고 한다.
남매는 중개인을 통해 2016년 초 A법인과 상속권 소송에 관한 위임 및 보수약정을 맺었다. 별도 착수금은 없고 성공 시 A법인에 ‘상속지분의 30%’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A법인은 남매 모발 등의 유전자검사 결과를 법원에 제출한 끝에 2018년 8월 친자식임을 최종 인정받았다. A법인은 남한 내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이미 진행 중이던 상속재산 분할 재판에도 참여했다. 2019년 2월 화해가 성립하면서 남매는 경기도 토지와 서울 소재 건물 등 196억2400만원을 상속받게 됐다.
다만 남한 내 상속권이 인정돼도 북한 주민이 실제로 수령하는 건 불가능한 상태다. 국제사회의 전방위 제재로 대북 송금이 막혀 있고, 북한 당국을 피해 당사자에게 상속 몫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은 소송 종료 후 별도 재산관리인을 지정해 북한 주민의 상속 재산을 관리한다. 사실상 동결 조치다.
이번 소송은 약정대로 상속 몫의 30%(58억8700만원)를 달라는 A법인의 요청을 남매 몫 재산을 맡은 관리인이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재산관리인은 재판에서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않은 북한 주민 상속 재산에 관한 법률 행위는 무효’라는 남북가족특례법 15조에 따라 이 사건 위임·보수약정은 전부 무효라고 주장했다. 1·2심은 재산관리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 재판 과정에서 보수와 관련된 남매의 구체적 의사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그러나 ‘30%를 주기로 한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 해도 위임약정까지 무효는 아니라며 원심을 뒤집었다. 소송을 무보수로 하기로 계약하지도 않았던 만큼 남매가 어느 정도 보수를 줄 묵시적 의사는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파기환송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사건 수임 경위와 난이도, 승소로 남매가 얻은 이익을 고려해 A법인이 받을 적정 대가를 정해야 한다.
이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