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잡는다… ASML의 ‘슈퍼을’ 자이스 찾은 이재용

입력 2024-04-29 02:27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6일(현지시간) 독일 오버코헨 자이스 본사에서 칼 람프레히트(맨 오른쪽) 자이스그룹 최고경영자(CEO), 안드레아스 페허(오른쪽 두 번째) 자이스 SMT CEO와 대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 시장의 ‘슈퍼을(乙)’로 통하는 네덜란드 ASML도 쩔쩔매는 독일 광학 기업 자이스(ZEISS)를 찾았다. 업계에서는 “자이스가 없으면 ASML도 존재할 수 없다”고 평가할 만큼 자이스는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데, 이 장비에 들어가는 광학 시스템을 자이스가 독점 공급한다. EUV 장비 1대에 필요한 자이스 부품만 3만개가 넘는다. 자이스는 EUV 기술 관련 핵심 특허를 2000개 이상 보유 중이다.

28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독일 오버코헨 자이스 본사를 찾아 반도체 부품과 장비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칼 람프레히트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과 기술 로드맵을 논의했다. 이 자리엔 지난주 취임한 크리스토퍼 푸케 ASML CEO도 있었다. 세 회사 CEO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례적이다.

이 회장이 자이스를 방문한 것은 글로벌 기업과 ‘네트워킹 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삼성전자가 TSMC보다 떨어지는 제품 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이스와의 기술 협력이 절실하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3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시장을 주도한다는 목표 아래 연내 EUV 공정을 적용한 6세대 10나노급 D램을 양산할 계획이다.

자이스와의 협업은 곧 ASML과의 협력 강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이스는 2026년까지 한국에 480억원을 투자해 연구·개발(R&D) 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 회장이 ‘영업사원’으로 세계를 뛰는 것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한 행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파운드리 수주 잔고는 약 160억 달러(KB증권 추정)로 역대 최대였다. 1위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크지만 향후 3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경쟁력을 토대로 추격하겠다는 게 삼성전자의 목표다. 시장조사 기관 옴디아는 3나노 이하 파운드리 시장 성장률이 연평균 64.8%로, 전체 시장 성장률(연평균 13.8%)을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한다. 메모리반도체 생산시설이 대부분인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점유율 확대를 위해 경기 평택시와 미국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건설 중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고객사는 100개 이상이다. 2028년에는 200개사가 넘을 것으로 업계는 본다.

이 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연이어 방문해 유럽 시장을 점검하고 주재원 간담회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