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법정의 트럼프

입력 2024-04-29 00:40 수정 2024-04-29 00:50

도널드 트럼프만큼 돈과 권력을 다 맛본 사람도 드물다. 부동산 개발로 억만장자가 된 데 이어 미국 대통령까지 지냈다. 자기 건물에 입주한 레스토랑에서 주로 밥을 먹고(음식을 입맛대로 통제할 수 있으니까), 선호하는 호텔만 골라서 묵고(화장실 바닥에 밝은 색상의 타일이 깔린 곳은 매우 싫어한다), 맘대로 개조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자기 비행기가 고장 나서 몇 달 빌려 탈 때 그렇게 짜증을 냈다고 한다)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지난 2주간 ‘성추문 입막음’ 사건 피고인으로 뉴욕 법원에 출두했는데, 중범죄 혐의나 대선 유세 차질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맘대로 하지 못하는 불편함’인 듯했다. 1940년대 지어 난방 온도 조절이 안 되는 법정에서 트럼프가 춥다고 호소하자 판사는 “더운 것보단 낫다”며 일축했다. 허락된 음료는 물뿐이니 늘 달고 사는 다이어트 콜라를 장시간 참아야 했고, 잠깐 휴정 때 말고는 일어설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었다. 재판 중 불평하듯 뭔가 중얼거리면 판사의 꾸중이 날아왔고, 증인을 비난하다 함구령을 받은 터라 법정 밖에서도 맘껏 말할 수 없었다. 대신 듣기 싫은 걸 전부 들어야 했다. 배심원 후보들이 SNS에서 트럼프를 욕했던 적나라한 글을 변호사가 일일이 읽으며 솎아낼 때 그 욕설을 바로 옆에서 듣고 있었다.

비교적 맘대로 한 것은 하품하기와 팔짱 끼기 정도였던 2주 동안, 재판을 마치고 맨해튼 트럼프타워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때, 재판 없는 수요일 자기 골프장에 갔을 때 가장 표정이 밝았다고 한다. 어느 날 배심원 한 명이 이가 아프다고 하자 서둘러 재판을 끝내며 “어서 치과에 가보라” 했던 판사는 막내아들 졸업식에 참석하게 재판을 미뤄 달라는 트럼프의 요청을 거절했다. 억만장자 트럼프는 돈이 많고, 대선 후보 트럼프는 힘이 세지만, 피고인 트럼프의 사정은 배심원의 치통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 이런 재판이 매주 나흘씩 4주 이상 더 남아 있다. 그의 측근들에게서 요즘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 “트럼프에겐 재판이 곧 처벌이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