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이병률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중
거의 모든 행이 ‘∼했던 적’으로 끝난다. 끝내 서술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당신도 ‘∼했던 적’이 있지 않느냐고 독자에게 묻는 것도 같고, 또 다른 ‘∼했던 적’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은 완성되는 게 아니며 무수한 “사랑한 적”으로 존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