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폭동 아니다” 전 세계 알려

입력 2024-04-23 05:40
레바논에서 무장단체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약 7년 만에 풀려난 테리 앤더슨 AP통신 특파원이 1991년 12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모습. AP연합뉴스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특파원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그린우드 레이크에서 향년 76세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앤더슨은 고교 졸업 직후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대학에서 저널리즘과 정치학을 전공한 뒤 AP통신에 입사했고, 5·18민주화운동 현장을 직접 취재해 실상을 보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앤더슨이 5·18 당시 광주를 취재해 작성한 기사 원고를 2020년 공개했는데, 이 기사에는 ‘폭동’이라는 전두환 정권의 발표와 정반대의 사실이 기록돼 있다. 앤더슨의 기사는 “광주 시민들은 기자들과의 담화에서 시위가 처음에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공수부대가 18~19일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격렬한 저항으로 변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앤더슨은 2020년 발간된 ‘AP, 역사의 목격자들’에서 “계엄군이 폭도 3명이 죽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확인을 위해 광주 시내를 헤집고 다니며 눈에 띄는 시체를 모조리 셌다”며 광주에 들어간 첫날 한 장소에서만 179구를 셌다고 밝혔다.

광주를 함께 취재한 존 니덤은 1989년 LA타임스 기고에서 앤더슨이 전남도청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다가 계엄군의 경고 사격을 받았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앤더슨은 이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취재하던 중 1985년 시아파 단체에 납치돼 7년 가까이 구금됐다가 풀려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플로리다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다 2015년 은퇴한 뒤 버지니아주 북부의 말 농장에서 지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