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달러당 1379.2원으로 마감한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1288.0원)보다 7.1%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의 같은 기간 상승률 6.5%보다도 높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고위 정책 당국자들은 이같은 환율 급등세를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에 따른 ‘킹달러’ 현상과 중동전 위기 등 외부 탓으로만 돌리기에 바쁘다. 한국 경제 펀더멘털은 문제 없으므로 대외 요인이 사라지면 수습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삼미·진로그룹 등 굴지의 기업이 잇따라 쓰러지는데도 정책 당국자들이 동남아에서 진행 중인 외환위기를 강건너 불구경 하듯 ‘펀더멘털 타령’만 했던 1997년 전반기 상황을 연상케 한다. 1997년 1월1일부터 4월 22일까지 환율은 올해의 상승률보다 1.4%포인트 낮은 5.7%로 수치로 보면 지금이 더 심각하다. 전쟁 중인 러시아(4.2%) 이스라엘(3.7%)보다도 높다. 이는 고물가와 함께 고환율·고금리 등 신3고 고통은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점점 취약해지고 안으로는 민생이 곪을 대로 곪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삼성그룹 임원들이 주6일 근무 등 비상경영에 나선 것과 견줘도 요즘 정책 당국자들의 태도는 한가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용산에서 민생을 논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동안의 대립을 접어 두고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나라 경제를 살릴 공통의 의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총선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등 묘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는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과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을 의제에 올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국민들의 ‘민생 협치’ 기대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우려를 낳고 있다. 민생과 정쟁의 핵심인 특검을 동시에 거론하는 건 회담을 ‘파투’내겠다는 것으로 안 만나니만 못하다. 회담에서 성과를 내려면 각자의 지지층보다 국민 전체를 봐야 한다. 안개 속으로 달리는 한국경제호를 살리기 위한 초당적 대책 마련이 그것이다. 공통의 관심사인 민생 경제 대책과 의료개혁 등이야 말로 꽉막힌 정국을 푸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