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진술분석관이 수사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 아동을 면담한 내용을 녹화한 영상은 형사재판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 사건 상고심 판결에서 이 같은 판단을 내놨다. 친모 A씨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지인과 성관계를 하는 등 성적 학대 혐의로 기소돼 징역 8년이 확정됐다. 친모의 지인 B씨와 C씨도 피해 아동을 상대로 유사 성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3년6개월이 확정됐다.
다만 A씨가 계부 D씨와 함께 아동을 학대한 혐의 등은 무죄를 확정받았다. 검찰 진술분석관이 아동을 면담한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이 재판에서 부정된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피해 아동은 2021년 5~9월 3회 경찰 조사를 받았다. 성폭력범죄처벌법에 따라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 피해자 진술 내용에 관한 의견 조회가 필요하다. 검사는 대검 진술분석관에게 의견을 요청했고, 면담 녹화물을 법원에 증거로 냈다.
하지만 1·2심과 대법원 모두 녹화물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312조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나온 피해자·참고인 진술은 조서·진술서 형태로 작성돼야 한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 면담이 검사의 요청으로 이뤄졌고 진술분석관이 대검 소속인 점, 장소도 검찰청 조사실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면담은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행위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동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무조건 부정된다는 것은 아니다”며 “검찰이 수사기관 소속이 아닌 외부 전문가에게 의견을 조회하거나 재판에서 의사·심리학자 등 전문가 의견을 받아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