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때 종교인 1700명 학살

입력 2024-04-18 04:07
전북 군산 신관교회 교인들이 희생된 ‘신관리 토굴’의 현재 모습. 진실화해위 제공

한국전쟁 전후로 기독교인을 포함한 종교인 1700명이 북한군 등에 의해 학살된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한국전쟁 시기 약 1700명의 종교인이 북한군과 빨치산 등에 의해 학살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전북 지역에서 희생된 기독교인만 104명에 달했다.

진실화해위는 전날 열린 제76차 위원회에서 첫 번째 사건으로 전북 지역 기독교인 104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에 대해 북한 정권 사과 촉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를 권고했다. 희생자 중에는 국내 1호 변호사 홍재기, 제헌 국회의원 백형남·윤석구 등 전북 내 주요 인사도 포함됐다.

진실화해위는 ‘6·25 피살자 명부’ 등 공적 자료, 교회와 교단으로부터 제공받은 과거 기록들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희생 사실을 파악했다. 북한군과 지방 좌익, 빨치산 등에 의해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유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인들이 전국에서 학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군 등은 우익활동을 하고 월남한 기독교인이 있다는 이유로 기독교인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독교인을 미국 선교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친미세력’으로 보고 집단 살해했다. 정읍 지역에서는 두암·정읍제일·매계교회 교인 17명이 희생됐다.

특히 두암교회 희생자들은 우익인사 가족과 같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빨치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김제 지역 희생자 23명 중 만경교회에서만 9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이들은 만경분주소(파출소) 우물, 전주형무소 등에서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다.

학살 당시 상황을 증언한 홍순길(91) 김제 원당교회 원로장로는 “내가 17살 때였다. 먼 친척을 비롯해 학생이나 여선생 등 젊은 기독교인이 많이 희생됐다”며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지고 이분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철희 김제 만경교회 목사는 “우리 교회에선 한국전쟁 당시 15명의 순교자가 발생했다”며 “소속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에서는 2018년 우리 교회가 순교사적지로 지정됐다. 이번에 국가에서 인정받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 2월 서울신학대 박명수 교수팀에 ‘6·25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를 의뢰해 한국전쟁 당시 기독교인과 천주교인 1145명이 희생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같은 해 5월부터 직권조사를 진행했다.

이가현 박용미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