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연일 요동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6일 장중 1400원을 넘겼고 코스피는 2600선을 겨우 지켰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예상 시점이 미뤄지는 가운데 중동 리스크까지 더해져 시장 불안이 커지는 모습이다. 외환 당국은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구두 개입에 나섰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94.5원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2022년 11월 이후 17개월 만에 1400원을 넘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 하반기에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동지역 긴장이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뜻하는 달러지수는 106을 나타내며 연초 대비 4.9% 올랐다.
시장은 원·달러 환율이 조만간 1400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메리츠증권은 “환율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을 고려해 2분기 상단을 1420원까지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고, 한국투자증권은 “중동 갈등 전개 상황에 따라 확전까지 연결될 경우 2차 상단으로 1440원을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으면 2022년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시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 된다. 지금까지 1400원대 환율은 2022년 미국발 고금리의 영향을 받은 시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1997년 외환위기 때에만 나타났다.
일본 엔화 가치도 하락을 이어갔다. 이날 달러당 154엔 선을 뚫은 엔·달러 환율은 160엔 선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외환 당국은 외환 변동성 완화를 위한 구두 개입에 나섰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날 “외환 당국은 환율 움직임, 외환 수급 등에 대해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지나친 외환시장 쏠림 현상은 우리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구두 개입은 2022년 9월 15일 이후 약 1년7개월 만이다. 전날부터 당국이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놨지만 환율이 계속 오름세를 보이자 직접적인 개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환율이 급등하자 국내 증시는 급락했다. 코스피는 장중 2600선을 위협받다가 다소 회복해 2609.63으로 장을 마쳤다. 시가총액 상위권 기업들의 낙폭이 컸다. 장중 8만원 선이 무너졌던 삼성전자는 전일 대비 2.68% 하락해 8만원을 겨우 지키며 마감했다. SK하이닉스는 4.84% 하락해 종가 17만9100원을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는 19.61포인트(2.30%) 내린 832.81로 장을 마쳤다.
외국인이 대거 매도세로 전환한 영향이 컸다.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2746억원, 기관은 2934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을 1조2043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외국인은 156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전 세계 직원의 10%를 해고한다는 소식은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의 주가에 겹악재로 작용했다. 코스닥 시총 1위 에코프로비엠은 3.29% 하락했고, 에코프로머티리얼즈 4.59%, LG화학 3.17%, 포스코퓨처엠 2.65% 등 낙폭을 기록했다.
정부는 중동 리스크 확산에 따른 금융 및 외환시장 변동성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중동 사태 관련 관계부처 합동 비상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시장이 우리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돼 과도한 변동성을 보일 경우 즉각적이고 과감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통해서는 매일 현지 상황을 점검하고 금융·실물 동향을 24시간 점검한다. 정부는 지난 14일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 직후 기재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가동 중이다.
금융감독원은 국내은행 리스크 담당 임원(CRO)을 소집해 “당초 예상과 달리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지연되고, 대외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 올해 자금조달계획을 재점검하고 중장기 외화자금 조달 등을 통해 대외 리스크에 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심희정 신재희 기자, 세종=김혜지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