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총선 후의 진담 하나

입력 2024-04-17 03:04

제22대 총선이 있었던 지난 10일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온 국민의 관심이 개표에 집중됐습니다. 방송사들은 오후 6시가 되자마자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저는 그 무렵 교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7시부터 수요기도회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느꼈기 때문인지 그날따라 성도들이 적어 보였습니다. 하긴 예배보다 개표 방송이 더 인기가 있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투표는 끝났고 나중에 차분히 결과를 보면 될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차분하지 못했습니다. 수개월 전부터 모이기만 하면 총선을 화제로 올렸습니다. 우리처럼 국민이 정치 전문가인 나라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은 국회의원 절반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과거 행적과 언행을 기억합니다. 전문가 뺨치는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 점점 열이 오르면서 나중에는 다툼이 됩니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심지어 가족끼리도 다툼을 벌입니다. 몇 개 진영으로 나뉘어 전투 의지를 불태웁니다.

예전 학창 시절 구호가 떠오릅니다. 그때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라고 외치곤 했었지요. 그러나 구호를 외친다고 이기는 게 아니어서 구호와 달리 게임에서는 무참하게 질 때도 많았습니다.

지난주 수요기도회 시간에 찬양대가 부른 찬양곡은 존 W 스테페의 ‘승전가’였습니다. 그날 온종일 온 나라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열망을 불태웠는데 예배 시간에 또 승전가를 들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기는 것은 지는 것보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는 ‘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다음 문제다’란 노래도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이기고 지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우정이란 내용입니다. 또 우리는 종종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는 게 이기는 것임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바꿔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마 5:44)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분명히 지는 것이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이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제국 박해 당시에 원형 경기장에서 의연했던 믿음의 선배들은 핍박하는 자를 위해 축복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쯤 되면 이기고 지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진정한 승리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신교회를 목회하면서 별세 신앙을 가르치신 이중표(1938~2005) 목사님께서는 ‘짐으로써 이기는 성도의 삶’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젊은 날 모 교회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설교 중에 찬양대 좌석을 향해 성경책을 집어 던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이기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로 인해 목회가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어리석은 저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장로님들 앞에서 새 예배당의 문을 걷어차서 문에 구멍이 생겨 새 문으로 바꿔 단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긴 것 같았으나 평생 흉터가 남는 아픔이 되었습니다.

총선을 통해 새삼 이기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방식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결은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욕망 분노 교만과 싸워 이겨야 진정한 승리입니다. 성도는 싸움의 상대를 우리 자신으로 바꿔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위대한 승리자입니다.

(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