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오식 (14) 콜롬비아에 현대건설의 남미 진출 위한 교두보 마련

입력 2024-04-18 03:01
권오식 보국에너텍 부회장은 현대건설 재직 당시 남미 시장에 1호 지사 설립을 위해 브라질 등에 출장을 다녔다. 당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오른쪽) 브라질 대통령과 면담한 모습.

카타르 지사장 4년의 근무를 마치고 2010년 1월 본사해외영업본부로 복귀해 영업 3실장을 맡았다.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3개 지역의 신시장 개척이 당시 현대건설의 목표였다. 내가 맡은 지역은 남미였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 생각하니 남미 시장도 두려울 게 없었다.

김중겸 당시 사장님이 나에게 준 첫 미션은 남미 지사를 개설하라는 것이었다. “브라질이 가장 큰 국가여서 할 일이 많을 테니 잘 조사해 보라”는 말에 브라질을 포함해 후보 국가를 추렸다.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쿠바 등 5개국을 선정해 차문호 당시 미국 뉴저지 지사장과 함께 14일간 출장을 떠났다. 한 나라에 2~3일을 머물며 영업3실 직원이 작성한 기초 자료를 가지고 그곳 입찰제도와 경쟁 회사, 하청 협력업체, 치안 문제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조사했다. 낮에는 관련 분야 인사 5~6명씩 만나고 밤에는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느라 거의 매일 2~3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있었다.

출장 복귀 길에 파나마에 하루 들러 조사한 뒤 브라질이 아닌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남미 1호 지사를 세우자는 결론을 내렸다. 콜롬비아는 친미 국가로 외국 투자 유치와 원조 자금을 많이 받아 발주 공사 건수가 가장 많았고 입찰제도도 투명해 도전해 볼 만했다. 또 보고타가 교통의 중심지였기에 남미 각국을 운항하는 국적 항공사인 아비앙카(Avianca)를 이용해 전 지역에 출장 다니기도 편했다.

출장 복귀 다음 날 결과를 보고했다. 가장 걱정한 것은 지사 설립을 지시하면서 사장님이 브라질을 언급한 점이었다. 다른 국가에 지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려니 어깨가 무거웠다.

“브라질이 경제 대국이며 공사 발주가 많은 것은 분명하나 현지 5개 대형 건설 업체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어 외국 업체가 충분한 숙지 없이 시작하기에는 어려운 곳입니다. 치안도 좋지 않습니다. 대안으로 영업 활동을 하기에 투명하고 입찰 건수도 비교적 많고 치안도 나은 콜롬비아 보고타에 1차로 지사를 설립하는 게 좋겠습니다. 브라질은 더 연구하고 공사를 수주할 가능성에 확신이 선 이후 제2 지사 설립을 추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사장님은 보고 내용을 들은 뒤 내가 줄곧 우려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두 말하지 않았다. 되레 남미 지도에서 보고타에 점을 찍으며 “당장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내 판단을 믿고 결정이 진행되니 출장 피로가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영업3실 직원들은 남미 시장의 선구자가 된 기분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콜롬비아 지사 설립 준비 작업에 들어갔고 외대 스페인어과 출신 엄태성 당시 과장을 지사장으로 선발해 보고타에 우선 출장을 보냈다. 지사 설립을 위한 세부 조사가 시작됐고 콜롬비아 수주 대상 공사 리스트를 세밀히 작성하도록 했다. 다른 남미 국가에서 추진해야 할 공사 목록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남미 시장 개척은 콜롬비아에서 베이요 하수 처리장 공사를 필두로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칠레에서 8개 공사를 수주했고 공사 규모는 11조4000억에 달했다. 예상치 못한 신시장 개척 성과였다. 그중 가장 큰 성과는 베네수엘라 대형 금융 공사 수주였다.

정리=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