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의 공장이나 도시를 3차원(3D)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쌍둥이)’ 기술이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산업계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은 생산 공정이나 설비 등 물리적 요소를 마치 쌍둥이처럼 가상공간에 복제하는 기술이다.
현실 세계의 데이터를 가상공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디지털 모의실험이 가능하다. 실물 테스트보다 안전하고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런 편의성에다 AI를 활용한 머신러닝·빅데이터 기술까지 더해지며 기업들의 관심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LG화학은 대기오염을 줄이는 환경 설비인 축열식소각로(RTO) 등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해 운영하고 있다. 설비에 투입된 기계, 장비를 실제와 같은 조건으로 가상 세계에 구현해 설비 이상 여부 등을 사전에 탐지한다. 사람이 직접 확인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장비도 디지털 가상 환경에서 살펴볼 수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15일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설비를 점검하고 고장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현실 공간에서 측정된 데이터를 가상공간에서 관리해 개선점 등을 찾아낸다는 점이 메타버스와의 차이점이다. 메타버스는 증강현실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통이 중심이라면, 디지털 트윈은 공장이나 도시 등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상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업계 관계자는 “말 그대로 가상의 공장을 하나 만드는 것”이라며 “제품 설계부터 생산, 성능 확인 등 작업 전반을 가상공간에서 실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인 옴니버스를 반도체 공장에 구현해 생산라인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 조립 등 다양한 공정을 가상공간에서 관리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대만 TSMC는 마이크로소프트, 독일 지멘스 등의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한 수율 관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배터리셀 제조 업체들도 디지털 트윈 도입에 팔을 걷어붙였다. 공정 최적화를 통해 배터리 수율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한다는 구상이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환경·안전 분야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HD현대의 해양산업 솔루션 기업인 HD현대마린솔루션은 가상공간에 구축한 선박 성능 예측 모델로 탄소 배출량을 측정·관리하는 ‘오션와이즈’ 솔루션을 운영한다. 선박 운항 경로와 기상·조류 변화 등에 따른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실제 운행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시스템이다.
정부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도 건물, 도로 등 도시 데이터를 가상 세계에 구축해 홍수 예측이나 사고 예방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로 복제한 도시가 실제 도시를 예측, 관리하는 상황이 현실로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