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동체 복원·공정사회로 바뀌는 획기적 체질 개선 필요”

입력 2024-04-16 03:05 수정 2024-04-16 06:27
게티이미지뱅크

‘세계 1위 초저출산국’ ‘합계출산율 0.6명대 전망’ ‘흑사병이 창궐한 14세기 유럽보다 인구 감소가 빠른 나라’…. 국내외 언론이 최근 보도한 한국의 저출산 실태 단면이다. 매해 합계출산율 최저치를 경신하는 우리 사회의 저출산 현상은 집값과 사교육비 증가, 가족·출산 가치관 변화, 극단적 경쟁 사회, 일·가정 양립 불가능 등 복합적 원인이 빚어낸 결과다. 2002년부터 20년 넘게 지속된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이하) 현상을 극복할 대안은 과연 존재할까. 목회자와 정신과 전문의, 사회복지학자 4명에게 현 사회 진단과 대안, 교회의 역할을 물었다.

저출산은 사회 구조 문제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육아 비용이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게 각계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는 1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현 2040 남녀가 자녀를 낳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자신이 학창시절에 겪은 고생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교육비와 해외 유학비 등 자녀의 입시 경쟁을 위해 부모가 떠안아야 할 비용이 막대해진 상황에서 출산은 무리라는 게 이들의 공통 인식이라는 것이다.

입시경쟁 완화에 대한 대안으로 이 목사는 ‘공교육 구조 개선으로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할 것’을 제시했다. 그는 “학교에서 자율적 교육이 불가능해 미션스쿨임에도 기독 가치관 교육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학창시절 성경을 배운 이들은 결혼과 출산에 긍정적 인식을 하는 편이다. 현 상황에선 이런 기회를 제공하기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학교별 특성화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이 목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와 관련된 학교를 택해 원하는 교육을 받으면 입시 일변도의 경쟁 구도도 완화되고 학생들도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 낳기 어려운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교회도 최선을 다하자고 조언했다. 그는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현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가 세운 잘못된 사회 구조의 희생양이다. 어른 세대가 앞장서 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회 역시 사회에서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장년 중심이 아닌 청년 중심의 공동체를 꾸려 이들이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김동호 목사 역시 “여전히 일류 대학이 목표이고 사교육에 목을 매는 현 세태” 탓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다만 김 목사는 “자녀를 기르기 쉽지 않은 환경임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자녀를 낳아 훗날 일가를 이뤘을 때의 행복이 얼마나 클지를 꼼꼼히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행복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출산과 육아의 여러 난제를 극복한 지혜가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복지 추구, 부모가 행복한 사회로

저출산 문제는 사회·경제·문화 요인이 얽힌 다층적 현상이다. 한두 가지 대책으로 파격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최근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을 펴낸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2040에게 ‘희망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데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들에게 특단의 대책을 제시하기보다 저출산 배경 요인을 하나씩 제거하며 ‘우리 사회가 살 만해졌다’란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대한민국 대개조 프로젝트’로 명명한 그는 “개별 대책보다는 변화에 대한 희망이 생길 때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결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체적으로는 일·가정 양립으로 ‘부모가 행복한 사회’와 사교육비 문제를 유발하는 무한경쟁 시대를 벗어나 ‘연대·복지사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모의 소유와 지위가 아닌 노력으로 인정받는 ‘공정사회’로 바뀌는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고 봤다.

한국교회를 향해서는 ‘공동체 복원’에 힘써주길 요청했다. 정 교수는 “저출산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게 관계의 단절”이라며 “지금은 출산과 가족관계에 주목하지만 곧 사회적 관계의 단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는 2021년 세계 17개 주요국 국민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를 물었는데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았다. 14개국 1순위로 꼽힌 ‘가족’은 3순위였고 ‘친구’는 5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했다. 그는 “인생에서 친구마저 사라진 한국인에게 한국교회가 건강한 공동체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교회가 위계서열을 내려놓고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준다면 청년뿐 아니라 전 세대에 희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인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획기적인 사회적 변화’ 없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긴 난망하다고 봤다. 김 교수는 “획기적인 사회 변화에 정책적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자녀에게 지옥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2040 남녀의 정서를 거스르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들이 사회에 대한 희망이 느껴지도록 국가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절실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