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분기 한국은행에서 45조1000억원을 빌려 쓴 것으로 나타났다. 더딘 경기 회복과 부동산 거래 부진 등으로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히자 연초 조기 재정집행을 위해 ‘한은 마이너스 통장’을 쓴 것이다.
14일 한은이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대정부 일시 대출금·이자액 내역에 따르면 지난달 정부는 한은에서 35조2000억원을 일시 대출했다. 관련 통계가 제공된 2011년 이후 월간 기준 최대 대출 금액이다. 지난 2월에는 9조9000억원을 빌려 1분기 대출금은 45조1000억원이다.
정부는 이 가운데 12조6000억원만 갚아 일시 대출금 잔액은 32조5000억원이다.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불어난 대출에 부담해야 할 이자는 수백억원이다. 정부는 올해 1분기 대출 잔액에 대한 이자 638억원을 2분기 중 한은에 납부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일시 대출금 이자로 1506억원을 냈다.
한은의 대정부 일시 대출제도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다. 세입과 세출 시차가 발생해 정부의 재정집행이 어려울 때 일시적으로 자금을 융통하는 수단이다. 정부가 일시 대출제도를 많이 이용할수록 예상보다 세입이 걷히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분기는 통상 세수가 적어 한은 일시 차입이 많은 시기”라며 “올해는 상반기 재정 집행이 많아 돈을 빌렸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상반기 중 복지·일자리·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을 중심으로 65%의 재정을 집행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지난해 대정부 일시 대출금이 연간 117조원을 넘자 한은은 대출 부대조건을 까다롭게 바꿨다. 일시차입금 평균잔액이 재정증권 평균잔액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이 부대조건에 추가됐다. 정부는 일시 차입이 기조적 부족 자금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게 유의하고 차입 누계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런데도 1분기 대출 잔액은 지난해보다 늘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수 부족이 심각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