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바닷가 근처나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평원으로 여행을 가면 언제나 가벼운 충격을 받는다. 공간에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구는 이름처럼 땅으로 이루어진 구(球)다. 구라는 물체에는 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곳은 모든 곳으로 이어져 있으며 순환하고 반복된다. 그러나 도시라는 공간은 내가 사는 이 행성이 구체라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게 한다. 언제나 건물로 눈앞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길들은 건물 앞에서 끝이 난다. 건물로 구획된 거리에서는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감각을 체화하게 된다.
그러나 바다나 드넓은 평원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과 지평선은 가도 가도 이어질 것 같은 풍경을 눈앞에 그려낸다. 파도와 모래바람은 이곳으로 밀려왔다 다시 먼 곳을 향해 밀려간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되기 이전에 우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원자였다. 백 년 미만의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의 몸으로 결집해 있는 원자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우리를 이루고 있던 미립자들은 다시 우주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될 것이다. 원자로서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영원은 멀리에 있지 않다. 우리 몸에 이미 쌓여 있는 것이 영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바다에 가면 기쁨과 해방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다는 우리에게 끝이라는 것은 사실 관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도시에 사는 동안 스스로와 세계의 한계를 경험해야 하는 인간의 불안은 바다의 무한함 앞에서 잠시 가라앉는다. 며칠 전에는 강릉의 백사장에 앉아 밀려오는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자아는 축소되고,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경험 중 하나였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