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신학교 많지만
일반인에게 기독교 제대로
소개하는 책 드물어
교회도 일반인의 언어로
신앙 설명하는 노력 부족
무신론 강한 일본의 눈높이
낮춘 기독교 서적들 ‘눈길’
일반인에게 기독교 제대로
소개하는 책 드물어
교회도 일반인의 언어로
신앙 설명하는 노력 부족
무신론 강한 일본의 눈높이
낮춘 기독교 서적들 ‘눈길’
일본 서점가에는 기독교를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들이 많다. 흥미롭다. 알다시피 일본은 신토(神道)라는 다신교 민간 신앙이 주류다.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는 일본인에게 낯설고 불편하다. 대신 지적인 차원에서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를 탐구하려는 수요는 제법 있는 모양이다.
‘신학을 다시 묻다’(후카이 토모아키)는 서양철학을 전공한 크리스천 저자가 신학이란 게 무엇이고 서양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평이한 언어로 설명하는 책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신학이 왜 필요한지 역설한 마지막 장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신학은 현대인에게 진정한 상대화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기독교는, 그리고 신학은 현대 사회의 관용 없는 그릇된 절대주의, 그 반대편에 있는 무절제한 상대주의, 그리고 그 양쪽에 잠복해 있는 자기 절대화 모두를 거부하고 비판한다. … 기독교가 본래 가지고 있던 모습과 사회적 기능을 회복하는 일에 신학이 기여함으로써 신학은 오늘날 세계에 말을 건네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해 국내에 번역된 ‘불가사의한 그리스도교’(오사와 마사치, 하시즈메 다이사부로 공저)는 좀 더 쉬운 책이다.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48년생 원로학자와 사회학을 전공한 58년생 학자 2명이 대담하는 형식으로 기독교를 쉽게 설명한다. “예수는 무슨 죄로 죽었나” 같은 질문을 보면, 일본인은 기독교를 정말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호기심 어린 관찰자 입장에서 ‘기독교는 참 모순이 많은데 불가사의하게도 세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약간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기독교 삐딱하게 읽기’라는 식으로 책 이름을 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공산당이나 1960년대 일본 청년들을 피 끓게 했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운동을 기독교와 비교하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중국과 한반도는 마르스크주의와 기독교 둘 다를 열렬히 받아들였는데 일본에선 어느 쪽도 수용하지 않았다”며 이유를 묻는다. 한국인들에게도 궁금한 대목이다.
오사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는 상당히 비슷하다면서 상대적으로 일본인들은 무신론적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더 젊은 하시즈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무신론은 신에게 지배당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다. 일본인은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하는 주체성을 좋아한다.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싫어한다. (일본에) 신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인데, 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대고 싶은 마음이 분산돼 인간의 주체성이 발휘되기 쉽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인의 종교관과는 완전히 다른 설명이어서 흥미롭다. 이런 게 기독교와 사회의 대화가 아닐까.
한국에는 기독교인도 신학교도 훨씬 많다. 그런데도 일반인에게 기독교를 제대로 소개하는 책이 드물다. 교회도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신앙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 않다. 미디어에도 교회는 가끔 사건·사고로 등장하는 정도다. 교회와 사회의 간극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코로나 방역이 끝난 뒤에도 신자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난감해한다.
‘불가사의한 그리스도교’나 ‘신학을 다시 묻다’에서도 거듭 이야기하지만,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개념과 (신 없이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합리적 사고는 프로테스탄트주의에서 출발했다. 교회나 성직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세계의 의미와 신의 존재를 탐구하려는 개신교적 태도는, 제도교회를 거부하고 스스로 영적 탐구를 하려는 현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과도 통한다. 영화 ‘파묘’를 1000만명 넘게 보는 이유다.
사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게 바로 독립적이고 책임 있는 개인의 합리적 사고를 존중하는 프로테스탄트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다. 진보도 보수도 장년도 청년도 학자도 유튜버도 자신에게 유리한 언어로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우르르 몰고 다니고 싶어하는 자들이 사회 주류가 됐다. 개개인을 존중하고 대화하려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이럴 때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가진 기독교를 소개할 사람, 어디 없을까.
현대인의 교양으로 기독교를 이해하려는 일본, 타락한 종교기관으로 지탄하거나 폐쇄적으로 호교하는 흐름 속에서 정작 신앙의 의미는 잃어가는 한국. 앞으로 10년 뒤 기독교의 위상이나 위치가 두 나라에서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