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지사장을 마치고 본사에 복귀해 해외영업본부 부서장을 할 때였다. 카타르 지사 재개를 위해 지사장에 나갔던 박모 차장이 6개월 만에 받은 종합검진에서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 부임한 지 3개월쯤부터 소화가 잘 안 되고 몸무게가 줄어 위장이 좋지 않은 정도로 생각하고 주로 죽만 먹으며 버텨가며 지사 재설립을 위해 뛰어다녔다고 했다.
아산병원에 급히 입원을 시키고 우리나라 간암 최고 권위자에게 치료를 맡겼다. 아직 자녀가 어리기에 어떻게 해서든 그가 나을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도왔다. 우리 부서뿐만 아니라 전사적으로 모금 운동을 벌여 적지 않은 돈이 모여 치료를 계속할 수 있었다. 회사 동료나 선후배가 번갈아 병문안했다. 나도 여러 번 병실에 갔다. “빨리 회복해 다시 카타르로 나가야지” 하는 응원에 그는 늘 노력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병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주변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입원한 지 3개월 만에 결국 하나님 곁으로 떠났다. 성실하고 친화력이 좋아 모두 좋아하는 직원이었기에 더 안타까웠다.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후임을 보내야 할 상황이 됐다. 카타르 도하 지사는 한동안 영업 활동이 없던 지역이었다. 그전에 회사 유동성 문제로 발주처인 카타르 국영석유회사에서 현대건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었다. 지사를 재개했던 것은 이와 관계없이 다국적 석유 회사인 쉘(Shell)이 카타르에 200억 달러를 투자해 발주하려는 천연가스액화(GTL) 공사에 참여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물론 경쟁이 치열해 수주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1인 지사를 설립했다.
박 차장 후임으로 내가 선정됐다. 쿠웨이트 때 임원 후임으로 차장인 내가 부임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이번에도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다. 상무가 1인 지사에 나간다는 것이 인력 낭비라는 인식이었다. 임원이 나갈 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에 나도 동감했다. 한 번 해외에 나가면 본사 복귀 시점에 빈자리가 있어야 복귀할 수 있고 또 해외에서 실적이 나쁘면 본사에 복귀하지 못하고 지사장으로 회사를 나갈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박 차장의 노력으로 재개된 지사를 헛되이 하지 않고 싶었다. 우리 회사가 카타르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쉘이 발주하는 공사 일부를 수주한다면 블랙리스트도 풀릴 거라 믿었다. 또 카타르는 천연가스를 본격적으로 개발해 얻은 막대한 수입으로 많은 공사를 발주하던 터라 수주 기회가 많을 것으로 기대했다. 나에게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좋은 기회라 생각해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 같았다. 어려웠던 쿠웨이트 시장을 부흥시켰듯 하나님은 다시 한번 나를 사용하시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2006년 3월 도하에 도착하니 25평 사무실에 인도 직원 1명, 필리핀 직원 1명, 그리고 현지 채용한 대리급 교민 1명이 있었다. 본사 직원은 나 혼자였다. 박 차장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렇게 카타르 지사장 생활은 시작됐다.
정리=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