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회심의 카드로 내세운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은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권 연합세력의 ‘정권 심판론’이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8일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선거 유세 때마다 이·조 심판론을 빼놓지 않고 활용했다. 그러나 선거 승패의 핵심 변수였던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10일 “심판론은 원래 야당의 선거 전략”이라며 “집권여당이라면 미래를 향한 비전 제시, 국정 성과를 통한 차별화로 승부를 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정부의 중간평가가 이뤄지는 총선에서 ‘야당 심판론’을 강조한 건 완전한 전략적 실패”라고 말했다. 정국 주도권을 쥔 여당이 ‘민생 살리기’보다는 ‘야당 때리기’에만 치중하면서 ‘프레임 싸움’에서 밀렸다는 것이다.
중도층이 집중된 수도권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을 두고는 정부·여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초반 2년 동안 뚜렷한 국정 성과를 보이지 못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국정 과제로 제시했던 이른바 ‘3대(노동·교육·연금) 개혁’ 등에서 별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 평론가는 “정치 효능감을 중시하는 중도층은 야당을 향해 ‘범죄자집단’ ‘쓰레기’ 이런 식으로 욕하는 걸 기대하지 않는다”며 “여당이 내세울 성과가 없으니 야당 심판론만 반복해서 주장한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나”고 꼬집었다.
특히 최근에는 의대 증원 문제로 의사단체와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이 더욱 커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여론이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건 맞지만, 극한 대립으로 국민들이 피해보는 상황까지 동의한 건 아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논란, 이종섭 전 주호주 대사의 ‘도주 출국’ 논란,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 등 여권발 리스크가 터질 때마다 한 박자 느린 대응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조 심판론으로 효과를 보려고 했다면 적어도 여권이 도덕적·정치적으로 우위에 있었어야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선거 막판까지 김준혁(경기 수원정)·양문석(경기 안산갑) 민주당 후보 논란에 대한 공세에 집중한 데 대해서도 실패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이 아니라 254개 지역구를 놓고 싸우는 총선에서 여당 대표가 힘을 쏟을 이슈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을 겨냥한 책임론도 거론됐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한 위원장이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하는 상황에서 ‘서서 죽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한숨이 나왔다”며 “마지막 사흘을 남기고서라도 국민 앞에 석고대죄했으면 이보다는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