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탈레반에 지원한다는 이유로 사담 후세인 제거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 항공모함 선단이 쿠웨이트 앞바다인 걸프만에서 수백 발의 미사일을 쏘았고 폭격기가 이라크를 쥐잡듯 공격했다. 이라크는 미군기지가 있는 쿠웨이트에 웜 미사일 17발로 반격했다. 쿠웨이트는 전쟁터로 변했다. 미국이 전면 공격 최후통첩을 하면서 지사와 현장 직원, 근로자 대부분은 미리 철수했다. 쿠웨이트에 있던 가족도 한국으로 돌아갔다.
전쟁이 발발한 2003년 3월 20일 지사엔 지사장인 나와 영업과장만, 현장 4곳엔 현장소장과 관리부장 등 총 10명이 남았다. 해외 공사 계약 조건에는 전쟁과 같은 불가항력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발주처로부터 불가항력 상황에 대한 승인이 있어야 철수할 수 있었다. 그래야 현장을 잠시 중단하더라도 공기 지연벌금을 물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현장 중단에 대한 발주처 승인과 관련 일처리를 위해 현지에 머물렀다.
쿠웨이트로 날아온 미사일 대부분은 미군의 패트리엇 미사일에 요격되거나 사막에 떨어졌다. 2발은 쿠웨이트에 떨어져 건물을 부쉈다. 인명 피해는 다행히 없었다. 그러나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미사일에 부착해 발사한다는 소문이 도는 등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다.
우리는 각자 텅 빈 숙소에서 CNN 방송을 틀어 놓고 화학전에 대비해 방호복을 입은 채 방독 마스크를 머리맡에 두고 잠을 청했다. 미사일이 날아올 때마다 고막을 찢을 듯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미사일이 시내에 떨어진다 해도 설마 내 숙소는 아니겠지’ 하며 마음을 달랬지만 두려움은 쉽게 떨치지 못했다. “서울에서 기도하고 있으니 당신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상황을 이겨내라”는 아내 말이 큰 위로가 됐다.
하루는 쿠웨이트로 취재 온 모 신문사 기자가 “왜 아직 철수하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단계별 철수 계획에 따라 잔류 인원은 아직 철수 단계가 아니라고 답했다. 다음 날 ‘건설사 직원, 목숨 건 잔류’라는 헤드라인이 걸린 뉴스가 신문 1면에 실렸다. 건설부에서는 ‘왜 목숨 건 잔류를 시키냐. 빨리 철수하라’고 했고 우리는 급하게 한국에 가게 됐다. 다행히 그즈음 쿠웨이트 발주처는 불가항력 상황에 대한 적용을 승인했다.
본사에서는 김호영 당시 본부장을 팀장으로 태스크포스팀을 두바이로 급파해 철수를 지원해 주었다. 우리는 카타르항공 비상 항공기에 좌석을 확보해 귀국할 수 있었다. 인천공항 세관원도 입국하는 우리를 알아볼 정도로 당시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전쟁터에서도 회사 자산을 보호하려고 잔류한 ‘책임감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쿠웨이트 발주처도 전쟁 중 현장 보존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전쟁 후 발주 공사 입찰에 현대건설을 아주 호의적으로 평가해줬다. 나는 쿠웨이트 지사장인 덕분에 회사에서 존재 가치를 높이게 됐다. 전쟁은 한 달 만에 끝났고 나는 다시 쿠웨이트로 복귀해 2년을 더 근무했다. 쿠웨이트를 떠나며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 기도를 드렸다.
정리=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