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증원 추진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이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의료계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강경 대응을 유지하던 사태 초반과 달리 한결 유연한 태도로 연일 의료계에 대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단일안’을 내겠다는 온건파 대화 시도에 강경파가 제동을 걸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정부는 8일 의대 증원 규모는 사실상 조정이 불가하다는 쪽에 무게를 실으면서도 대화 여지를 열어뒀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2000명’은 연구 결과물과 여러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서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된다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부 입장은 크게 변화가 없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대화를 강조한 담화를 발표한 이후 강조점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박 차관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유연하고 포용적이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사태 초반 전공의 처분 등 원칙 대응했던 것과 달리 의료계와의 대화에 초점을 맞춘 발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단체가 박 차관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대화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상황에서 유연한 자세를 강조하다 보니 발언이 모호하게 해석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유화적 메시지는 의사 집단행동 장기화에 따른 국민 피로도가 높은 데다 전공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교수들마저 한계에 직면한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의사 집단행동 사태 8주 차에 접어들도록 의·정이 제대로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서 정부의 갈등 조정 능력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것도 정부로선 부담이다. 전날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전공의, 의대 교수들과 함께 총선 이후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힌 것에 화답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단일안 도출을 두고 일부 강경파가 공개 반발하는 등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SNS에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썼다. 전공의들은 이미 의대 증원 백지화를 포함한 7대 요구사항을 제시했는데, 새로운 안을 도출한다는 것은 결국 협상 후퇴라며 내부 반발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의협 내부에서도 정부와의 소통에 적극적인 김 비대위원장과 강경파인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모습이다.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에 ‘임 회장 당선인이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임 당선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비대위가 내놓은 유예안은 내 의견조차 물어보지 않고 결정한 것”이라며 “의협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 합동 기자회견도 나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김유나 박선영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