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 앞에 우산 들고 쪼그려 앉은 노란 점퍼의 대통령. 내게 윤석열정부 첫해는 ‘구경하는 대통령’ 모습으로 각인돼 있다. 위로하고 공감하는 대신 그냥 쳐다보는 정부. 그때 대통령이 본 건 불과 몇 시간 전 세 사람이 목숨을 잃은 참사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대통령은 행인이 했대도 부적절했을 발언을 여러 번 했다. 본인이 사는 언덕 위 부촌 상황을 전하고, 이웃의 재난에 놀란 주민에게 ‘그들이 왜 대피를 못 했는지’ 묻고, 부정확한 지식을 토대로 멋대로 진단을 내렸다. 대통령실은 나중에 카드뉴스를 뿌렸다가 거뒀다. ‘국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참사 사진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현재 진술인지, 미래 다짐인지 모를 기묘한 문장 아닌가. 정부 태도가 이상하다는 건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그래서 시민들에게 교정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 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연이은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까. 3개월 뒤 이태원에서는 159명이 도심을 걷다 압사당하는 믿기 어려운 참사가 일어났고, 이듬해 여름에는 충북 오송 지하차도에서 제방 붕괴가 부른 침수로 14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즈음 폭우 실종자를 찾던 해병대 1사단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참사는 곧장 갈등이 됐다. 원인 규명부터 책임자 처벌과 사과, 애도, 피해자 지원, 예방책 마련까지 모든 단계의 모든 노력이 정부라는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사법 밖에서 어떤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 건 이 정부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건 곱씹을수록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사건 발생 500일 넘었는데 이태원 참사의 핵심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 윤희근 경찰청장은 현직이다. 그 사이 유가족은 거리로 내몰리고,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국민들은 희생자를 애도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모든 게 사건 당일에 멈춘 그대로. 온 나라가 꿈쩍도 못 하는 상황이다.
이번 4·10 총선의 핵심 키워드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대통령을 돕고 싶다면 여당을 찍고, 정권을 심판하고 싶다면 그건 그것대로 선택지가 많아졌다. 지지자 마음은 심플한 반면, 반대 이유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국가 권력기관을 검찰이 장악한 나라 꼴을 개탄하고, 다른 이는 추락한 인권과 노동권을 걱정한다. 어떤 이는 치솟는 사과·귤·대파값과 부자 감세에 거덜나는 나라 경제에 화가 났고, 또 다른 이는 위기에 처한 표현의 자유와 대통령의 불통이 심각하다고 여긴다. 나는 그 모든 것 중 이 정부의 정서적 결함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회적 참사를 다루는 태도에서는 공동체로서 한국 사회를 바닥부터 흔드는 근본적 문제가 보인다. 정부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모든 걸 사법화하는 검찰의 특징이거나, 그들끼리만 아는 책임 회피의 기술 같은 걸까.
누른다고 의문과 슬픔이 사라질 리 없다. 이태원 참사부터 되짚어보자. 많은 게 미스터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제대로 묻고 답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참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질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관련 재판에서 대통령실 이전이 이태원 참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용산경찰서의 업무 과부하와 마약 단속 인력과 관련한 진술도 있었다. 물론 그게 곧장 참사 원인과 연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직접 인과만 진실은 아니다. 경찰 수뇌부의 자원 배분이 이태원에서 과거와 다른 어떤 차이를 만들었는지 밝혀야 한다. 그래야 그날 밤 경찰의 이례적 무능을 설명할 수 있다. 지난 주말 나는 2장의 투표용지에 내가 바라는 소망을 찍었다. 투표가 답을 찾는 길을 내주면 좋겠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