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과’ 이유 있었네… 매점매석 ‘밭떼기 사업자’까지 가세

입력 2024-04-08 04:07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7일 사과가 진열돼 있다. 사과는 지난해 기상이변과 병충해로 생산량이 30% 이상 줄어 ‘금(金)사과’로 불릴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품귀 현상이 빚어지는 일부 농산물에 대한 ‘밭떼기’ 관행이 심화하고 있다. 사과처럼 수요가 꾸준한데 공급이 원활치 않은 농산물을 미리 대량 선점해 사들이는 사업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늘어날 경우 농산물의 원활한 공급이 어려워져 소비자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충북 단양군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7일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지난여름 과수원을 돌아다니며 밭을 통째로 계약하고 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른 도매업자처럼 산지 공판장 등에 나온 물량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과수원에서 사과를 직접 가져오는 방식을 택했다. 그때는 전국적 폭우와 거듭된 병충해로 유례없는 사과 흉작이 예상되던 시점이었다. 사과값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하고 발 빠르게 움직인 셈이다.

기존에도 일부 온라인 상거래업자들이 과수원에서 소량의 과일을 공급받아 판매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이런 사업 규모가 나날이 확장하는 추세다. 상거래업체 A사 관계자는 “우리는 10여 곳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확보해둔 사과 물량만 수백t”이라고 했다.

이들은 다른 도매상보다 저렴한 가격에 사과를 팔고 있다. A사에서 판매하는 가장 좋은 품질의 사과는 10㎏당 9만원이다. 지난 3일 기준 가락시장에선 특등급 사과 가격이 10㎏당 11만원이었다. 도매가보다 저렴하게 팔아도 수요가 많아 남는 장사여서 밭떼기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이런 사업자가 늘어나면 과일 공급에 차질이 생겨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밭떼기 업체 고객 일부는 시중가보다 싸게 물건을 사서 이득을 본다. 하지만 마트나 시장으로 흘러가는 물량이 줄고, 가격이 뛰면서 대다수 소비자는 피해를 본다. 전반적인 시장 가격이 오르면 밭떼기 업체들도 점차 판매가를 상향 조정하게 되고, 결국 소비자 모두가 더 비싸게 농산물을 구입해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마스크를 사재기한 것과 비슷한 문제”라며 “업체들의 소매 규모가 커지거나 조직적으로 이뤄지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가 출하량과 가격 등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계약재배’ 물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영등포 청과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 중인 B씨는 “흉작이 예상되기 전 정부가 먼저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밭떼기로 과일 물량이 일부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정부가 유통 과정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