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발전 때문에… 622조 반도체 클러스터 ‘삐걱’

입력 2024-04-08 04:03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인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일대의 지난 1월 모습.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47년까지 622조원을 투자할 수 있도록 전력·용수 등 인프라 확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경기 남부에 조성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인프라 구축 계획이 열 공급 방식을 둘러싼 정부와 기업의 의견 차이로 난항을 겪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줄 열 공급 시설 구축은 필수다. 다만 기업 측이 집단에너지사업법을 근거로 추진해 온 열병합발전소 신설 계획에 대해 인허가를 신청하면서 양측 입장이 부딪쳤다. 전력 당국은 기업이 거론하는 열병합발전은 한국전력공사 적자 원인 중 하나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방식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민간을 중심으로 622조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2047년까지 경기 남부 권역을 잇는 반도체 생태계를 완성한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는 2030년부터, SK하이닉스는 2027년부터 첫 가동을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이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송전선로 건설 기간 30% 단축으로 10기가와트(GW) 규모 전력 공급 동맥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처음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열 공급’ 인프라를 둘러싼 잡음이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열 공급을 계열사인 SK E&S에서 받기 위해 1.2기가와트(GW) 규모 열병합발전소를 짓는 계획을 추진해왔고, 산업부에 인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신청한 이 계획은 제동이 걸린 상태다. 생산된 전기를 한전에 팔 수 있는 시설이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 자체 보일러를 쓰는 삼성전자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 중인 산업부 입장에서는 이 사업 인허가를 내주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 한전 적자로 이어졌던 경험 탓이다. 더욱이 LNG 발전량 비중은 지난해 기준 26.8%로 이미 적지 않은 양이다. 국제 정세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LNG 발전을 늘리면 위험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LNG 발전도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는 점도 부담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삼성처럼 자체 보일러를 만들 수 있고, 열병합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반도체 공장에서 자체 소비하는 방법도 있는 만큼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는 부분은 납득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반면 SK 측은 노후화하고 가스공사가 비싸게 공급한 원료를 사용하는 기존 LNG 발전과 달리 SK가 추진하는 직수입 LNG발전기는 발전단가가 석탄 수준으로 오히려 저렴해 한전 부담을 늘리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보일러보다 열효율이 높은 열병합발전소가 낫다는 것이다. 생산된 전기를 자체 소비하는 것도 ‘설비용량 500㎿ 이하’에만 해당돼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이 사업에 인허가를 내주면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걸림돌이다. 현재 SK E&S 외에 6곳이 LNG를 쓰는 열병합발전소의 신·증설 인허가를 신청했다. 이들도 핵심은 열 공급이지만 LNG 발전이 병행돼 산업부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문제는 원활한 반도체 공장 열 공급은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반도체 소재 생산 시설을 갖춘 삼성SDI와 LG이노텍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구미국가산단 열 공급은 이번에 산업부에 증설을 신청한 GS E&R이 맡고 있다. 인허가를 못 받으면 삼성SDI·LG이노텍 공장도 열 공급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범부처 성격의 갈등 조정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서울시 대관람차 규제 완화 등을 비롯해 47조 규모 투자를 신속 지원한 ‘투자 활성화 대책’처럼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해법이 있는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