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입력 2024-04-08 04:02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을 단숨에 영웅으로 만드는 아이언맨 슈트는 인공지능(AI)의 도움으로 제작된다. ‘자비스’로 불리는 AI가 설계 도면과 각종 부품을 뚝딱 만들어낸다. 실시간 전투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고하고 때로는 농담까지 건넨다. 자비스 같은 AI 시스템이 바로 범용인공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다. AGI는 복잡한 연산뿐 아니라 추론이나 창의적 작업도 수월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의 모든 지시에 응할 수 있는 만능 AI다.

‘재앙적 AI’라는 말은 이 같은 AGI의 등장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시점, 즉 특이점(singularity) 단계에 이른 AI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예컨대 AI가 생화학 무기와 살상 로봇 개발 등에 나서는 상황을 막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인간 통제를 벗어나 자의식을 갖게 된 AI는 무기 개발 같은 일에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기 어려운 탓이다.

AI 반대론자들은 AI가 인류를 절멸시키는 시나리오까지 우려하지만 과장된 시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은 수년 안에 AGI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다만 황 CEO는 ‘인간이 치르는 모든 종류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AI’를 AGI라고 전제하면서 앞으로 5년 내 AGI 개발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AGI 개발에 가장 먼저 근접할 곳으로는 오픈AI가 꼽힌다. 챗GPT 열풍을 일으킨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지난해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주의하지 않는다면 꽤 재앙적일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AI 개발을 강조했다. 그런데 말과 달리 최근 그의 행보는 급해 보인다. 동분서주 투자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1000억 달러(약 134조6000억원)를 들여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센터 구축과 본격 가동까지는 6년가량 걸릴 전망이다. 챗GPT 시리즈와는 차원이 다른 괴물 같은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데이터센터가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젝트가 순항한다면 2030년 전후로 AGI 개발이 본격화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AI전략최고위협의회’가 출범했다. 미국, 중국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는 세계 3위권의 AI 기술 확보를 목표로 한 민관 협의체다. AI 연구·개발 프로젝트와 국민의 AI 활용도를 높이는 사업 등을 두루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일을 맡는다. 이들 과제는 물론 중요하지만, AI 개발에 필수적인 반도체 기술의 해외 유출 문제를 다루는 정책 추진이 시급해 보인다. 특히 이 문제는 AI 모델 개발에 후발 주자인 국내 기업이 그나마 비교우위를 갖춘 반도체 분야에서 경고음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2위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지난 2월 밝혔다. 공교로운 점은 국내 반도체 전문가를 마이크론이 대거 영입한 뒤 이 회사 기술력이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정보기술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 기업으로의 반도체 핵심 공정과 관련 장비 등에 관한 기술 유출 문제가 이미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둘러 기술 유출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몇 년 혹은 수십 년 걸릴지 모르는 AGI 개발은 앞으로 더 아득한 먼 나라 얘기가 될 수 있다.

김경택 산업1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