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후안무치’ 아니면 ‘내로남불’

입력 2024-04-08 04:08

양문석·김준혁 후보 감싸는
민주당, 공직자 도덕성 따질
자격 있나… 이종섭도 유감

‘이종섭 사태’와 더불어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후보 논란은 정치권이 민심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은 윤석열정부 명운이 걸려 있다는 4·10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이종섭 전 호주대사를 임명했다. 설령 윤 대통령이 이 전 대사 임명 전에 이 건이 논란이 될 것을 예상 못했다 하더라도 임명 발표 이후 출국금지를 해제하면서까지 이 전 대사를 부임시킨 것은 그렇게 해도 총선을 이길 수 있다고 오판한 게 아니면 다분히 감정적인 조치였을 것이다. 뒤늦게 이 전 대사 사퇴로 마무리됐지만 국민의힘은 그 후폭풍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

민심을 우습게 아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편법 대출로 수사 대상이 된 양 후보(경기 안산갑)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막말이 드러나는 김 후보(경기 수원정)의 공천을 취소하지 않고 선거를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민의힘은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된 도태우(대구 중·남구)·장예찬(부산 수영) 후보의 공천을 취소하면서 국민 눈높이를 의식하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민주당은 그야말로 ‘마이웨이’다.

특히 편법 대출이나 과거 막말 등 논란 그 자체보다 후보들과 민주당의 대응이 더 가관이다. 양 후보 문제는 4년여 전 ‘조국 사태’와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금융 당국은 양 후보 딸이 사업자 대출을 받기 위해 새마을금고에 제출했던 증빙서류 상당수가 허위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사문서위조 혐의가 짙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자녀 입시에 관해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2심까지 유죄 선고를 받았다.

둘 다 서울 강남에 살고 법무부 장관,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등 정부 고위직을 지낸 저명인사면서 서류까지 위조해가며 가족 이익을 챙기려 했다는 점에서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정부가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긴 원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바람이 더 강하다는 점을 믿고 양 후보 문제를 슬그머니 덮으려 한다.

양 후보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22대 국회에 입성해 ‘언론개혁’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면 할 수 있겠지만, 언론에 의해 편법 대출 의혹이 제기된 양 후보가 주도하는 언론개혁에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 후보도 과거 발언에 대해 사과는 했지만 “앞으로 정제된 언어로 소통하고, 품위를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총선 완주 의지를 다졌다. 큰 이변이 없다면 양 후보와 김 후보는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출마하는 만큼 금배지를 달 것으로 보인다.

두 후보 문제가 설령 총선 판세를 뒤집지 못한다 하더라도 두 후보의 완주로 인해 민주당은 앞으로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따질 자격을 상실했다. 만약 총선 이후 윤석열정부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 과정에서 후보자 가족의 편법 대출 같은 문제가 불거질 때 민주당이 해당 후보자에게 사퇴를 요구할 수 있을까. 당장 “양문석 의원은요?” 하는 질문이 날아올 것이다. 국민 정서에 한참 동떨어진 과거 발언이 드러나도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앞으로 언행을 조심하겠다”고 버티면 그만일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는 선거 과정에서 민심의 판단을 받았으므로 임명직과 다르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갖는 막대한 특권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 기준이 임명직 공직자보다 무거우면 무겁지 가볍다 할 수 없다.

이미 18차례 장관급 인사를 국회 동의 없이 임명해온 윤 대통령도 더욱 거침없이 문제 인사들을 임명할 것 같다. ‘후안무치’가 한국 정치의 뉴노멀이 되는 거다.

민주당이 그때 가서 현 정부를 후안무치하다고 비판한들 그 비판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민주당이 총선 이후 다른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따진다면 그 자체로 ‘내로남불’이다. 선거 전에도 이토록 국민 눈높이를 무시하는데, 선거 이후에는 얼마나 더 기가 찬 행동들을 이어갈지 벌써 걱정이 밀려온다.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