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점유율 60%로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는 귀하신 몸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한 반도체 동맹의 장벽을 차근차근 쌓고 있는 미국과 일본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줘가며 유치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특히 지난 2월 말 4조2000억원을 지원해 규슈현 구마모토에 반도체 1공장을 유치한 일본은 향후 8조원을 더 부어 2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반도체 1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파운드리 순위로는 2위지만 점유율은 11%밖에 안 되는 삼성전자로선 일본 내 TSMC 공장이 추가될수록 점유율 격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미국 정부의 엄청난 보조금 공세로 힘을 얻은 미국 기업의 D램 추격도 삼성전자엔 이 분야 1위 자리 수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일 대만에서 발생한 규모 7.2의 강진이 이런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KB증권은 5일 ‘대만 지진,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 계기’라고 보고서 제목을 에둘러 표현했지만 국내 업체에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장밋빛 전망을 했다. 한국 반도체 생태계가 메모리와 파운드리 공급망 다변화의 최적 대안으로 부상해 장기적으로 반사이익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시설 조업을 일부 중단했던 TSMC는 전체 공장 설비의 80% 이상이 복구됐으며,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포함한 주요 장비는 손상되지 않았다고 그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지진에 따른 파운드리 생산 차질은 대만에 글로벌 파운드리 생산의 69%가 집중된 산업 구조, 즉 단일 공급망 리스크를 부각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단언했다. 파운드리뿐 아니라 D램 분야 ‘겹호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미국 마이크론은 대부분의 D램을 대만에서 생산하는데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도 역시 반사효과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고 이를 십분 활용하자는 말처럼 들린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재해를 미국 주도의 칩워(반도체 전쟁) 앞에서 돈벌이 기회로 치부하는 현실이 7.2 강진만큼이나 섬뜩하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