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악취를 심하게 풍기는 노숙인을 경찰에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들은 3일(현지시간) 리시 수낵 정부가 최근 하원에 제출한 새 형사사법안을 놓고 야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새 형사사법안은 1824년 제정된 부랑자법을 대체하는 것으로, 구걸과 일부 노숙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조항을 폐지하는 대신 ‘소란을 일으키는’ 노숙인을 강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했으며, 이에 불응할 경우 2500파운드(425만여원)의 범칙금 부과나 체포가 가능하도록 했다.
구체적인 단속 대상에는 과도한 소음이나 냄새, 쓰레기 무단 투기 등이 포함됐으며 주위 환경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도 들어가 있다. 가장 큰 논란은 악취가 폭력이나 공공시설 파괴 등과 같은 범죄로 규정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노동당 소속 앨릭스 노리스 하원의원은 “새 형사사법안을 통해 급증하는 폭력 범죄와 치안 신뢰도 급락 등 진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정부는 냄새나는 노숙자를 강제로 내쫓겠다고 나선 셈”며 “우선순위가 뒤집혔다”고 비판했다.
여당인 보수당 소속 밥 블랙먼 하원의원도 “악취를 소란의 정의에 포함시키는 건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노숙인들은 목욕은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는 사정”이라고 꼬집었다.
블랙먼 의원은 이 법안에 ‘지방 당국이나 경찰의 법 집행 권한을 특정 상황으로 제한하는 지침’을 의무화하는 수정안을 제시했으며, 이 수정안에는 보수당 소속 하원의원 11명과 노동당 등 야당 소속 하원의원 21명이 찬성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해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총리실 대변인은 “우리는 이 법안을 통해 노숙을 범죄화하는 낡은 조항을 뜯어고치려는 것”이라며 “악취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입법 취지와는 정반대”라고 밝혔다.
질리언 키건 교육부 장관은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냄새 때문에 경찰에 체포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