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 여윳돈 50조 넘게 줄었다

입력 2024-04-05 04:07

지난해 가계 여유자금이 50조원 넘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고금리에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경기 부진 속에 소득 증가율도 정체한 여파다. 가계 대출 규모도 절반으로 줄며 예금과 채권 주식 등 모든 금융상품 운용 규모가 크게 축소됐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2023년 자금순환’ 집계를 보면 지난해 가계(개인사업자 포함)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액(순운용)은 158조2000억원으로 전년(209조원)보다 50조8000억원 줄었다. 순운용액은 예금·채권·주식·보험 등으로 굴린 자금(운용)에서 금융회사 등에서 빌린 자금(조달)을 뺀 금액이다. 가계 순운용 규모가 줄었다는 건 그만큼 가계의 여유자금이 줄었다는 의미다.

정진우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금리가 상승하면서 이자 비용이 늘었고, 경기 부진이 지속해 전체적인 소득 증가율도 둔화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가계소득 증가율(전년 대비)은 2.8%로 2022년 7.3%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2022년은 코로나19를 강하게 겪은 전년의 기저효과로 소득 증가율이 높았다. 고금리 상황은 자금조달 규모도 축소시켰다. 주택자금 관련 대출 증가세는 이어졌지만 가계 신용대출이나 개인사업자 대출 등이 급감해 금융기관 대출은 절반 이하 수준으로 줄었다.

조달이 줄었는데도 순운용이 줄었다는 건 전체 가계자금 운용 규모 축소 폭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가계 예치금, 주식 투자, 채권 투자, 보험 등에 들어간 가계의 전체 자금운용액은 지난해 194조7000억원으로 1년 새 88조원 이상 줄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81조6000억원) 이후 가장 적었다. 특히 가계의 국내 주식 투자(지분증권 및 투자펀드)액은 2022년 31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4조9000억원으로 돌아서며 -7조원을 기록했던 2013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한은은 가계 여유자금이 줄어 금융상품 운용 규모가 축소된 가운데 위험 자산은 처분으로 돌아섰다고 분석했다.

기업의 자금 운용 상황도 크게 악화했다. 비금융 법인기업은 지난해 순조달 규모가 109조6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88조5000억원 줄었다. 기업이 투자 등에 쓸 자금을 끌어올 여력이 감소했다는 의미다. 정 팀장은 “대내외 불확실성 증대, 금리 상승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증가, 매출 부진 등이 겹쳐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 채권 및 주식 발행 등이 모두 축소됐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